시인선집의 정전 형성 요인은 선집의 발행 시기, 당대의 주류적 문학 경향, 편집 주체가 지지하는 특정한 이념과 문학 경향, 대중의 독서 취향과 인지도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정전화 주체, 정전화 이데올로기, 정전화 효과로 범주화된다. 해방기에 발간된 시인선집인 ≪시집≫(임학수편, 한성도서주식회사, 1949)과 ≪현대조선명시선≫(서정주편, 온문사, 1950)은 선집의 편집원칙과 수록 시인과 작품 목록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그 차이는 정전화 주체와 정전화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임학수의 정치적 좌표는 ‘좌익적 중간파’이며, 그의 ‘시’ 개념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서정주는 ‘민족문학’ 진영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언어 민족주의’와 ‘순수시’를 결합한 새로운 ‘시’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시집≫은 정치적 이념과 문예 조직의 배타성을 극복하고 ‘좌익’과 ‘우익’의 이념적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근대시문학사의 온전한 목록을 구성하였다. ≪현대조선명시선≫은 ‘민족문학’의 관점에서 근대시문학사를 새롭게 구성하였으며, ‘저항시’를 새로운 ‘민족’시의 영역으로 발굴하였다. 시인선집들은 과거의 시인선집의 목록을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정전이 될 텍스트를 선택한다. 해방기 시인선집은 신경향파시인들과 1920년대 초기의 시인들을 배제하고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서정주, 신석정, 장만영을 새로운 시인 목록에 추가하였다. 이는 근대시문학사의 무게 중심이 1920년대에서 1930년대로 이동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식민지시대와 해방기시인선집을 통틀어, 현대의 정전 텍스트에 가장 근접한 시인선집은 ≪현대조선명시선≫이다. 이것은 근대시의 정전화 과정에서 ≪현대조선명시선≫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반면, 해방기에 형성된 ‘민족문학’의 관점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재생산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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