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6일은 의사(義士) 안중근의 순국 100주년이다. 조선을 병탄하려는 일본의 수장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안중근에 대한 추모의식은 남과 북이 다를 바 없으나 그 구현에 있어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 연구에서는 북한에서 안중근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매체 변용 과정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안중근에 대한 최초의 형상화는 동북항일연합군의 김일성 부대 내에서 김일성이 직접 창작한 혁명연극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가 시초였다. 이 혁명연극은 북한 문예의 기원이 될 만큼 그 역사적 아우라가 굳건하며, 1979년 김정일에 의하여 영화화되고 2002년에 소설화되는 등 매체적 각색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이 연구에서는 그 과정에 내적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적하여 입증하고자 했다. 다른 혁명연극보다 뒤늦게 사실 확인이 되고 있는 점, 김일성의 창작이 아니라 각색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는 점을 앞선 연구에서 밝혔고, 김일성이 최초로 창작한 발신작이 아니라 개작이라는 점을 이번 연구에서 재구하여 그 허구성을 총체적으로 실증하였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이등박문 등이 표방한 제국주의적 인종주의적 동양평화론을 반박하고 당시 삼국정족을 주장하면서도 인종주의에 바탕한 조선의 삼국제휴론을 뛰어넘어, 대안적인 동아시아의 질서를 모색․확립하려 한 국제정치학적 구상이다. 북한에서는 매체적 변용을 통해 안중근의 위업을 기리면서 동시에 김일성이 그 계승자로서 환생되고 있음을 형상화하려 하지만, 실제 그 사상의 계승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받기는 어렵다. 북핵 문제, 북한 인민의 인권 등 산적한 대내외적 현안들을 통해 볼 때 북한은 안중근보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정한론적 논리를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김일성의 문화사상적 시원이 구축된 계기를 생각한다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정신을 이어받는 진정한 의미 구현이 북한 내부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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