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남한의 5.16 쿠데타에 대한 북한의 대응을 사례로 하여 북한의 국내정치 변화에 미친 남한요인을 규명하고 논의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특히 최근 발굴된 제한된 1차 자료를 통해서나마 이를 경험적으로 입증해 보고자 하였다. 북한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남한에서의 군사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5.16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부터 군사 쿠데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정 정도 검토하고 있었다. 북한은 5.16 쿠데타 발생 직후 이를 미국이 사주한 쿠데타로 추측했다가 다시 군내 진보세력에 의한 독자적인 쿠데타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심지어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는 성명 발표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공 국시를 내건 군사정권이 혁신세력을 탄압하는 것 등을 보고 이틀 만에 5.16 쿠데타에 평가가 미국이 사주한 '반동세력'에 의한 쿠데타로 다시 완전히 바뀐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박정희에 대한 일정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간첩 황태성을 남파하여 박정희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이와 같이 북한은 쿠데타에 대한 정확한 정보부재 상태에서 한동안 혼선을 빚고 있었다. 그리고 5.16 쿠데타는 북한의 국방경제병진노선 착수와 같은 정책 전환의 결정적 계기였다. 북한은 5.16 쿠데타에 대한 충격으로 1차 7개년계획 선포 연기를 결정하고, 국방력 강화에 총력 매진을 촉구하는 등 국방경제병진노선의 골격을 마련했다. 그리고 1962년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5차 전원회의에서 이 노선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기점으로 북한사회는 점차 강력한 군사동원체제로 나아갔다. 한마디로 남한의 정치변동이 북한의 정책 및 국내정치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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