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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北魏 平城時代 胡人들의 생활과 습속 - 胡俗 유지와 그 배경을 중심으로 -

The Nomads or Pastoral Men’s Life and Culture in Early Period of Beiwei

상세내역
저자 최진열
소속 및 직함 경상대학교
발행기관 국학연구원
학술지 동방학지
권호사항 (149)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83-326
발행 시기 2026년
키워드 #胡服   #이동식 주거   #燒葬   #西郊祭天   #夷禮   #漢化 문제   #최진열
조회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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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 北魏前期 胡人들의 생활과 습속을 의식주와 喪葬·祭禮, 儀禮와 禮樂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北魏前期 胡人들은 목축생활과 말타기에 적합한 褲褶과 胡袍·胡帽·靴 등 자신들의 고유한 의복과 신발 등을 착용하였다. 또 北魏前期에 그들의 생업인 목축과 사냥은 먹을거리와 주거양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와 고고학 유물에 의하면 北魏前期 胡族支配層은 유목민의 이동식 가옥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했다. 심지어 수도인 平城 遺址에서도 平城의 서반부에는 목조건축물이 존재하지 않아 어떤 학자는 이 지역이 유목민들의 이동식 가옥이 존재했다고 추론하기도 하였다. 이밖에 喪葬(燒葬 풍습)과 西郊祭天, 祭禮, ‘夷禮’ 역시 鮮卑와 烏桓 등 북방 유목민들의 풍습을 그대로 이어받았음이 각종 문헌자료에서 입증되었다. 北魏前期 胡人들이 ‘漢化’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를 여전히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魏書』 禮志와 樂志 등을 보면 北魏前期 胡族支配層이 궁중 의례와 음악 등을 수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풍의 궁중 의례와 冠服은 北魏前期 내내 실행되지 않았다. 음악 역시 실제로는 漢族뿐만 아니라 五胡諸國의 음악을 채용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種族들의 음악이 공존하던 상황이었다. 이처럼 胡人들의 胡俗 유지에 영향을 준 것은 유목 혹은 목축 생활이었고, 당시의 한랭한 기후 역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 北魏前期 수도 平城이 농경의 북한계선 밖에 위치하여 북방 유목민과 남쪽의 농경민인 漢族의 문화가 공존하거나 전자가 우세한 지역이었던 것도 胡人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