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30년대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로 활동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북한에서 여성 엘리트로 활동한 허정숙은 조선의 특수성을 고려한 여성론을 주장, 한국적 페미니즘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한 이론가 중 한 명이다. 허정숙의 여성론은 기본적으로 조선여성은 봉건적 억압과 자본주의 억압이라는 이중억압을 받고 있으며 이 두 가지 억압에서 모두 해방될 때 여성의 완전한 해방이 이뤄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계급해방 이전에 성적해방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 여성들만의 독자적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조선여성의 인식이 아직까지 봉건적 관념에 얽매여 있으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조선여성 자신의개성에 대한 의식적 각성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따라서 독자적 여성운동이 여성계몽운동에 집중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여성운동의 방향이나 방법은 허정숙의 조선여성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녀에게 인간은 감정을 통해 삶의 고통을 느끼고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번민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조선여성은 자본주의와 봉건제라는 이중 억압 하에서 감정도 갖지 못한 ‘노예’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그녀는 조선여성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삶에 대한 예민한 감정, 감정에 대한 자각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 이후에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상의 작은 억압에서부터 저항을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운동과 여성지식인들은 조선여성들이 이러한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여성들을 계몽하는 책임을 맡는다. 허정숙의 여성론은 ‘한국적’ 페미니즘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민족해방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또한 여성운동과 결별한 이후 그녀는 자신이 주장했던 여성론과 상반되게 봉건적 체제 하에서 반평생을살아가는 모순적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허정숙 개인이 원래 이중적이고 모순적이었기보다는 허정숙이 살았던 시대의 이중성과 모순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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