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친일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해방공간의 문학사는 여러 갈래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지금처럼 친일을 민족에 대한 반역으로만 본다면, 많은 문학인들이 해방 후에 행한 자기비판의 의미는 종래의 평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이 식민지 조선인 작가에게 요구한 것이 ‘협력’이었고 이 협력을 거부한 것이 ‘저항’이었다면, 해방 후 조선인 작가들에게 사회가 요구한 것은 ‘저항’조차 할 수 없는 더욱 복잡해진 정치적 입장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문학가로서 개인이 취할 수 있었던 것이자, 살아남기 위해 취해야만 했던 것이 바로 자기비판이다. 해방 후 발표된 소설 가운데 자기 비판적 성격을 띤 작품은 많지 않지만, 그 중에서 자기비판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태준의 <해방전후>와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자기비판을 넘어 자기합리화의 성격이 강한 두 작품과 달리 장혁주의 <협박>은 해방 후 혼란한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장혁주는 조선인 최초로 일본문단에 등단했지만, 대일협력이력과 해방 후 일본에 귀화했고 대부분의 소설을 일본어로 창작한 사실 때문에 그동안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일본문단에 처음으로 그의 존재를 알린 소설 <아귀도>를 보면 장혁주가 조선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가난하고 힘이 없는 조선인들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해방 후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해방을 맞은 혼란한 조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폭로한 작품 <협박>은 <해방전후>와 <민족의 죄인>에는 없는 해방을 맞은 조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글은 해방 후 좌익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한 이태준의 <해방전후>와 남한에 남은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과 함께 해방을 맞은 조선과 조선을 해방시킨 일본, 이 두 곳을 모두 경험한 장혁주의 <협박>을 통해 해방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있었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해방을 맞은 조선의 모습을 일방적인 시선이 아니라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아야만, ‘암흑기’로 평가받는 일제 말기부터 해방공간의 한국문학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쓸 수 있으며 그것이 그 후의 한국문학사를 연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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