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김창걸 문학연구에서 미 해결과제로 남아있는 해방 전 미 발표작과 그것의 개작으로 인한 작품의 진실성 문제와, 만주국의 아편단금 정책을 소재로 함으로 하여 국책문학의 논란이 일고 있는 <청공>에 대해 작가의 생애와 고백 등 주변자료와 함께 검토해보았다. 김창걸의 해방 전 미 발표작은 스스로의 평가에 따라 습작기의 작품, 발표작, 발표했으나 만주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고 퇴고된 작품, 발표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작품 4 가지로 유형화 할 수 있으며 그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부류는 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바, 잠재창작으로 볼 수 있다. 김창걸의 등단이 1938년 말에 이루어졌으므로, 본고는 그 이전에 발표된 김창걸의 작품을 모두 습작기의 작품으로 보았다. 습작기의 작품들이 『만선일보』 발표작들에 비해 작품성이 훨씬 뛰어나고 구성이 탄탄함에도 불구하고 미발표작으로 남은 것에 대해 본고는 김창걸의 스스로의 고백 등의 자료에 근거하여 일제와 만주국의 검열을 의식하여 작가가 투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잠재창작으로 표상되는 세 번째와 네 번째 부류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작가가 발표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창작 당시, 일제와 만주국의 검열을 의식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 작품들에서 표현되는 강한 경향성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별 무리가 없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김창걸의 <청공>은 아편의 해독성과 위해성을 고발하고 아편 근절의 강한 의지를 내세운 아편단금 정책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현경준의 <유맹>과는 본질적으로 구분되며 국책문학을 가장하여 국책문학의 테두리안에서 만주국의 국책을 강도 높게 비판한 비판적 글쓰기이다. 조선보다는 덜했지만 나름대로 국책문학과 친일이 강요되던 1930년대 말, 1940년대 초의 만주에서 이러한 잠재창작과 비판적 글쓰기가 가능했던 것은 반일사상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던 간도의 민족학교에서의 교육을 통한 사상의 형성과 성장 그리고 작가의 연보에서 확인된 공산주의자로의 성장에 의한 사상의 가능성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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