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상상의 유기성을 통해 형상화된 『흰 까마귀의 手記』는 이범선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분단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 경험했던 과거 사건의 기억들을 자전적으로 기록한 이 소설은 북한의 안주에서 남한의 서울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또 다시 서울로 이어지는 공간적 이동이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공간이동의 요인은 ‘나’의 자발적인 이주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분단과 전쟁 탓으로,그 공간 이동에는 역사적인 시간의 흔적이 내재해 있다. 분단 이후 30년이라는 한 세대를 지나는 동안에 일어난 공간 이동은 노년기에 접어든 월남인의 정체성 형성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근거가 되는데, 이때고향은 인생행로의 주축으로서 의미가 있다. 고향은 이미 분단 이전의 모습이아님에도 불구하고 고향이 여전히 상황에 따라 수용되고 변모되면서 부단히 재생산될 수 있는 것은 그곳이 실재공간이 아니라 상상된 상징으로서의 심상공간이기 때문이다.『흰 까마귀의 手記』에서 상황에 따라 변주되는 심상공간으로서의 고향은 월남인 ‘나’는 물론, 저자 이범선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의 출발점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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