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54년 알제리전쟁 발발부터 1962년 독립에 이르는 시기를 대상으로,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을 둘러싼 남북한의 인식과 외교적 대응을 비교·분석한다. 남한은 프랑스와 서방 통신사의 보도 프레임을 수용하여 알제리전쟁을 ‘폭동’으로 규정하면서도, 일제 식민지 경험을 공유한 약소민족으로서의 동병상련을 표출하며 자유진영 강화를 위한 탈식민을 강조하였다. 반면 북한은 알제리 사태를 식민지배에 맞선 ‘민족해방운동’으로 규정하고, 알제리 공산당과 사회주의 진영의 ‘영도’와 ‘지지·동정’을 강조함으로써 반제·반식민 투쟁의 연장선에서 위치시켰다. 1958년 알제리 임시정부 수립 이후 북한은 조기 승인, 대표단 상호 방문, 구호 물자 제공 등을 통해 적극적인 연대 외교를 전개한 반면, 남한은 프랑스·미국과 아랍·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유엔 외교를 고려해 ‘침묵’이라는 절충적 입장을 택했다. 1962년 독립과 신생 정부 수립 이후에는 남한이 대(對)중립국·아프리카 외교의 거점 확보를 위해 알제리를 신속히 승인하고 관계 개선에 나선 반면, 북한은 이미 구축한 관계를 바탕으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한발 앞선 외교적 입지를 확보하였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이 글은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을 둘러싼 남북한의 담론과 실천이 탈식민·냉전·분단·발전을 둘러싼 (비)대칭적 구도를 드러내며, 동시에 이후 비동맹운동과 알제리를 매개로 전개되는 남북한 외교경쟁의 기원을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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