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과 국적법은 근대 국제질서에서 나타난 산물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제정러시아와 일본의 훈춘과 용정에 대한 침입은 연변지역의 영토주권을 침해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역사상 제1부 불문국적법의 파생과 성문국적법의 산생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였다. 6.25전쟁기간 미국이 19세기 제정러시아와 20 세기 일본의 전례를 본떠 연변지역에 대해 전개한 침략간섭은 신 중국의 영토주권과 법체계 구축과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 과정에서 중국역사상 제2 부 불문국적법이 파생 되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성립 이후, 신중국은 국민당시기 법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법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고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였다. 그목적은 이승만의 한국군대를 지지하는 것으로 김일성의 북한 군대에 대항하는것뿐만 아니라 신생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6.25전쟁이라는 계기를 빌어 연변지역에 대한 군사침입은 신중국의 영토주권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신중국의 경제발전과 법제체계의 구축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시에 연변의 지정학적 환경과 조선이주민들의 국적문제를 다시 민감한 정치·법적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6.25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든1953년, 신 중국은 헌법초안 작성과 선거법공포를 단행하였다. 지방선거가 임박함에 따라 동북에 거주하는 120만 조선이주민들의 참정권과 그 전제가 되는국적문제가 정면으로 제기되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 되었으나, 신중국의 첫 5개년 계획의 가동, 미국과 동아시아자본주의진영의 군사동맹, 특히 미국의 잠재적 군사위협으로 ‘유민실변’의 시급성은 여전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공동북국의 보고를 토대로, 1953년 8월 17일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는 조선이주민국적문제에 관한 지시를 하달하였다. 성문국적법이 부재한 특수한 역사시기에 「중앙지시」는 불문국적법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며,신 중국이 조선이주민 및 기타 국적문제를 해결·처리하는 법적근거가 되었다. 한마디로, 국적은 자연인과 특정 국가를 연결하는 법적근거이자, 국가가속인관할권과 외교보호권을 행사하는 법적토대이다. 「중앙지시」는 신 중국성립부터 1980년 「현행 국적법」이 제정·공포되기까지, 신 중국이 조선이주민들의 국적문제 및 기타 국적사무를 해결·처리하는 법적근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중국역사상 제2부 불문국적법으로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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