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도 학계의 통일한국문학사 집필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서의 월북문인들의 행방을 찾는 연구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월북문인으로는 고경흠․안막․안함광․이찬․허준 등이 있다. 고경흠과 허준은 소설을 썼고, 이찬은 시인이었으며, 안막과 안함광은 평론가로 활동했다. 하지만 북한문학사에서는 이찬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 이유는 이찬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치적인 숙청을 당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월북문인들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파시즘과 분단 상황이라는 두 개의 암초를 맞아 나름대로 예술적으로 실험적인 도전을 시도했지만, 커다란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좌초하고 말았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1967년을 기점으로 카프문학의 전통에 기반을 두려는 그룹과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투쟁을 새로운 전통으로 형성하려는 그룹간의 치열한 노선투쟁이 전개되었다. 전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학에 근거를 두고 있었고 후자는 소위 주체사상을 토대로 삼았다. 결과는 당연히 김일성이 후원하는 후자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그 결과 한설야와 더불어 고경흠․안함광․안막 등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된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허준도 이 무렵 함께 역사에서 실종된 것으로 판단된다. 같은 카프계열의 작가라고해도 그들이 지향한 삶과 문학은 프리즘에 비친 빛의 색깔처럼 실로 다양다기 했다. 배제의 원칙이 아닌 ‘수렴의 논리’에 의해 접근해 들어가자 공통적인 현상으로서 보편성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 추억과 회상의 정서가 아닌 <지금 - 여기>의 시선으로 바라다보게 되자, 정치적 획일성이 아닌 문화적 스펙트럼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요약하면, 첫째 5명의 월북문인들의 삶과 문학에서 예술가로서의 ‘순수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둘째, 개개인의 사상과 세계관의 편차는 매우 컸지만, 공통적으로 파시즘에 맞선 민족주의적 열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셋째, 이들 월북문인들이 분단 상황 속에서도 평등․민주의 이상적 사회주의의 국가 건설을 지향한 것만은 분명하다. 넷째, 다섯 명의 월북 문인들이 모두 어느 정도 정치적 헤게모니 쟁탈전의 희생자로 드러났다. 이찬도 간접적인 희생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들 1910년에 출생한 예술가들은 ‘작가적인 치열성’이 부족했다고 비판할 수 있다. 즉 상당수 문인들이 문학운동사에서는 자료가 남아있지만 창작의 공간인 자료실에는 남아 있는 텍스트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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