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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불우한 '신동', 강점기 젊은 예술혼의 방황- 비평가, 시인, 매니저로서의 안막의 생애 -

A Study on the unfortunate 'an infant prodigy' An-mak, the wandering of the passion for 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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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미숙
소속 및 직함 숭의여자대학
발행기관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학술지 한국문예비평연구
권호사항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23-255
발행 시기 2026년
키워드 #월북문인   #안막   #최승희   #마르크시즘   #비평   #프로비평   #전향.   #조미숙
조회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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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문학 비평가 안막의 문화활동에 관한 연구이다. 안막은 30년대 카프의 볼세비키화에 앞장선 프로 비평가로서 당의 문학, 형식을 버리지 않는 내용 위주의 문학, 프롤레타리아 작가의 임무 등을 강조한 인물이다. 그는 해방 공간에서 입북하였고 후에 아내 최승희도 월북시킨다. 1959년 북의 정권 내부에서 대규모 숙청이 단행될 때 안막도 숙청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안막은 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이었던 한설야 제거에 대한 사전 작업으로 1958년 경 카프 계열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질 때 서만일과 함께 축출당했다는 것이다. 최승희 역시 1969년 숙청되었다고 알려진다. 안막의 평론은 과도한 정치적 편향성을 고민하는 외에 대중성과 프롤레타리아 독자성만은 일관된 주장을 보인다. 고집스런 부분이 있지만 당시와 같은 한계적 상황에서 폭넓은 문화 이해력과 외국의 문화 섭취력은 놀랄 정도이기도 하다. 그는 문학적 활동이 억압된 상황에서 자신의 문학의 길을 포기하고 최승희라는 문화적 방안을 선택한다. 안막은 자신이 비평과 시를 통해 대중을 계몽, 아지 프로하려고 했던 것처럼 최승희의 무용은 보다 충격적인 방식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방식이었다고 판단하였던 것 같다. 최승희의 무용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다 선명하게 만듦으로써 대중이 민족을 생각하고 해야 할 바를 보일 수 있다면 자신의 문학을 접고라도 의미 있을 수 있으리라 안막은 생각하였던 것이다. 안막은 문화를 통해 세계가 개선, 발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대중의 개안과 행복을 문화를 도구화하려고 했다. 이것이 그의 문화관이라고 생각된다. 안막은 그것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북한을 생각했고 그 체제 내에서 아내 최승희와 함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하는 세상을 꿈꿀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던 것이다. 러시아문학을 전공하며 프로문학의 길을 걸었던 안막의 월북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술에는 사상과 이념상 자유로움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남편인 안막의 권유로 한 타의적인 월북생활에서 자유적 성향이 강한 최승희가 예술가로서 행복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세계적 예술가를 체제 안에 가둬 비참하게 말년을 맞이하게 한 것은 안막의 뛰어난 매니저 활약상에 남긴 오점이라고 판단된다. 결국 그가 보인 문화적 편력은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의 불운한 행로가 아니었나 싶다. 그의 문화적 변화에 관하여는 월북 후의 생애에 관해 자료를 좀 더 보완하여 변화의 동인 등을 치열하게 연구해야 뚜렷해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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