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종전이후 중화민국의 주요 신문인 『대공보』‧『신보』‧『중앙일보』의 한국관련 보도를 통해 냉전초기 한‧중 관계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전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반도는 미·소 주도의 냉전체제로 급속히 재편되었다. 전승국인 중국은 국공내전에 휩싸여 대외적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고, 동아시아 질서재편의 주체가 되지 못하였다. 전후 한국문제처리에서 중국은 미·소의 주도로 진행된 국제논의에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단지 역사적 현실적으로 긴밀한 연대와 외교적 후견역할을 통한 도의적 책임론을 내세워 한국문제에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하였다. 그러나 자국의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의 후원과 협력에 의해 제한적 역할만 가능할 뿐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줄곧 주장해온 4개국 협의에 의한 한국독립과 미·소 군대의 철수는 끝내 관철되지 않았다. 남북한 분단 및 미군정의 평가와 관련하여 중국 언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특히 미·소의 분할점령이 잘못된 것으로, 지리적 분할지배가 정치이념과 통치체제의 분리로 이어지고, 결국 영구분단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세력대결로 악화된 미·소관계가 동아시아에서 재현되어 냉전체제로 치달았고, 한국이 첫 희생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분단의 본질적 책임이 미·소 양국에게 있다고 보았다. 중국 언론들은 남북분단의 원인과 책임, 반탁운동, 미소공동위원회의 실패, 남한단독선거 등 각종 현안에 관하여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한결같이 미군정의 대한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주된 이유는 미군정이 한국의 독립운동과 임정활동을 철저히 무시한 반면, 親美의 탈을 쓴 親日세력은 비호함으로써 자주적 통일독립의 민족열망을 짓밟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남북한은 극단적 냉전구도로 굳어져 김구·김규식처럼 중도성향의 지도자들이 설자리를 잃게 되었고 민심을 잃게 된 것으로 보았다. 남한 총선거이후 중국의 한국관련 보도는 공산세력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폭로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쪽으로 전환하였다. 그 연장선에서 국공내전도 중국의 내부문제가 아닌 전후 냉전체제와 관련된 것으로, 그 해결책 역시 미국을 비롯한 국제연대에서 찾았다. 중국정부는 냉전체제와 그에 따른 미국의 군사개입에서 내전 승리의 열쇠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친미반공을 앞세운 남한정부의 등장은 중국정부에게 새로운 호재였다. 그렇지만 냉전구도에서 한·중 양국은 통일독립의 민족과제보다 이념 및 체제대결에 얽매이게 된 것이다. 전후 미소의 이념대결과 세력팽창이 한국분단을 통해 동아시아 냉전체제로 구체화되었다. 여기에 중국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얽혀 들어가 내전 승리를 모색했지만 냉전의 한 축으로 작용하였다. 결국 종전이후 한국과 중국은 항일시기의 우호, 협력을 토대로 새로운 관계발전을 모색할 수 있었지만 미·소에 의해 조성된 냉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오히려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전면에 서서 한국은 南北으로, 중국은 兩岸으로 각각 분리된 채 20세기 중반을 대결구도로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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