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식은 해방 공간에서 ‘문제적 개인’으로 산 사람이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시작하여 해방공간을 거치며 자신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북에서 사형을 당한 그의 삶 자체가 우리의 왜곡된 현대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며 한문학과 유교적 가풍, 기독교와 영문학, 중국과 미국유학, 미군정청과 조선문학가동맹, 보도연맹과 인민군 입대, 휴전협정시 북측 통역원 장교였다가 스파이혐의로 사형당하는 점 등은 파란만장한 우리의 비극적인 산 역사에 다름 아니다. 그에게서 세계관으로 자리 잡은 양가적 가치관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정국을 헤쳐 나온 우리들의 비극적 세계관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광주학생운동과 만보산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민족주의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머물러 있어서 구체성은 결여되었고 따라서 시기별로 현실적 대응에는 현실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행로는 세계정세와 민족에 대한 구체적 인식, 확고한 현실 인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나타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었던 유일한 기간인 해방공간에서 몇 번에 걸친 그의 정치적 변신은 그 바탕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던 셈이다. 습작기에 그는 카프의 영향으로 현실인식이 강한 작품들을 썼는가 하면 유년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주제로 한 서정적 작품들도 써서 시적 세계관이 뚜렷하게 확립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유학 후에 쓴 시집 『종』에는 해방의 환희와 열정, 환상에 젖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 미군정의 실체를 파악하고 나서부터 비판과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러한 비관적 목소리는 결국 조국의 현실이 일제 식민지시대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는 인식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결국 남로당의 정책 노선이었던 것이며 따라서 그는 새나라 건설이라는 명제를 앞세우고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투지를 불태우는 목적시를 쓰게 된다. 그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미국유학을 거쳤다는 자만감, 자부심, 현학적인 태도는 정치적 현실의 좌절을 맞으면서 민족의 미래를 예언하는 신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는데 『제신의 분노』는 바로 그의 삶과 세계관의 최종 결정판인 셈이다. 『제신의 분노』 이후 작품 활동은 사실상 중단되고 정치적 전향을 거듭하던 그는 자신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정치세력에 의해서 41세의 나이로 죽게 된다. 세계 질서의 재편이라는 거시적인 안목을 갖추지 못 한 채, 미시적인 시야로 해방정국을 맞이한 결과로 그는 정치적 변신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이데올로기와 민족이라는 관념에만 충실했던 탓에 시의 의장은 무시되었으며 그 결과로 오히려 그의 문학은 인민대중과는 더욱 멀어져 갔다. 정치적 격동기에 정치적 삶을 산 시인과 정치에 예속된 문학의 모습을 설정식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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