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북조선농민동맹중앙위원회 군중문화부가 토지개혁 3년차를 맞아 출간한 『농민소설집』 시리즈(총3권·4책)의 기획 배경과 의의를 살펴보았다. 『농민소설집』은 전형적인 농촌 선전 서사로 읽히기 쉽지만, 그 서사의 배면에는 당대 북한사회의 핵심 과제들과 욕망, 난제들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해방기 ‘토지개혁’은 북한에서 이룩한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와 ‘민주주의’의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자, 진정한 ‘해방’의 의미와 본질을 설파할 수 있는 증좌였다. 남북은 ‘두 번의 해방’이라는 수사를 통해 ‘해방’의 의미를 각기 전유하고, 이념적 정당성과 우월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농민소설집』은 토지개혁으로 실현된 경자유전의 원칙 위에서 농민이 경제적 주체로서 일정한 토대를 구축하고, 그를 기반으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게 되는 진정한 ‘농민해방’의 미래를 그렸다. 『농민소설집』은 공식적 창작방법론에 따라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교양’을 체현한 작품을 선별하여 편찬되었지만, 그 소설들에는 기획의도를 배반하는, 소유·신분 질서의 해체로 인한 농촌 공동체의 갈등과 미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경제구조를 기형화한 식민지 자본주의의 침투 이후에도 나름의 도덕경제 안에서 공동체를 꾸렸던 마을 사람들은 토지개혁을 기점으로 새 경제 체제와 변화된 도덕률의 세계에 인입하게 된다. 과거의 소유 제도와 관습 안에서 규정되던 한 사회의 도덕과 질서가 격랑을 맞게 된 것이다. 지주와 빈농을 선악의 도덕적 구도로 간주하는 관점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예컨대 과거 자영농·자소작농이 토지개혁을 바라보는 미묘한 심리나 신분의 위계가 해체되며 머슴과 동등한 처지가 된 평민의 불만이 새로운 공동체에 수렴-충돌하는 양태를 소설은 ‘해소 가능한 갈등’으로 그려냈다. 『농민소설집』의 소설들은 당대의 담론장에서 운위되지 않고 포착되지 않았던 문제들을 담아내고, 현실세계의 난제들을 서사적 공간에서 재현하며 그 해결의 과정을 상상적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레알리틱’한 농촌 현실의 재현을 중시했던 북의 작가들이 ‘도래해야 할 미래’를 전제한 뒤, 그 ‘오지 않은 미래’를 형상화해야 했던 난망, 서사적 공백으로 남겨진 도정의 흔적은 오지 않은(을) 미래를 ‘부재(不在)’로 언명하지 않기 위한 문학의 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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