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냉전 해체 이후 과거 비판적으로 규정했던 공채를 다시금 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자 급격한 정책 변화를 완충시키기 위해1950년 공채를 발행했던 경험과 기억을 재소환하며 그것이 자신의 역사 속에내재되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향후 어떤 경제체제로 전환할지 알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적 요소의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측면에서 과거의방식이 재활용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본 논문은 첫째, 공채가 전쟁과의 연관성보다는해방 이후 내적 발전의 과정에서 제기되었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 공채는 인민들의 일제 말기 수탈 경험과 구매력 부족으로 해방 직후 곧바로 시행되지는못했지만, 사회주의 경제이론가들은 초기부터 공채발행을 주요 재정정책의 방식으로 구상하고 있었다. 둘째, 공채는 한국전쟁 직전에 발행되었기 때문에 주로 전쟁 준비의 일환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애초의 발행 목적은 부족한경제 부문 및 인프라 건설에 대한 투자에 놓여 있었다. 공채는 남북에 분단정부가 수립된 상황 속에서 전쟁을 통한 ‘말살’이 아닌 체제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발행된 측면이 컸다. 셋째, 공채의 운용방식은 단순히 할당이나의무 부과가 아닌 복권식 추첨 방식을 원용함으로써 대중들의 잘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 측면이 있었다. 공채는 전쟁이 초래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인민들의 피해로 되돌아왔지만, 그 안에는 정부의 ‘실용적’ 정책과 인민들의 ‘실리적’ 선택이 내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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