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이란 창을 통해 북한 사회구조를 분석한 이 연구는 세 가지 측면에 주목하였다. 즉 계급정책이 체제형성에 끼친 영향 분석, 전전시기 38이북지역에 건설된 국가의 성격 규명, 해방 후 계급질서의 재편양상과 새로운 질서가 낳은 문화양식의 성격 검토 등이다. 이 연구가 중점을 둔 목표는 해방 후 북한의 계급정책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체제형성에 끼친 영향을 추적하는데 있다. 오늘날까지 재생산되고 있는 북한 사회주의문화를 주조하기 시작한 틀은 언제 어떤 계기를 통해 형성되었을까? 이 중대한 의문에 직면한 북한연구자들은 다양한 해석의 제시를 통해 풍부한 성과를 축적해 왔다. 필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현상을 재생산하고 있는 체제운영의 메커니즘과 기본동력이 이미 한국전쟁 이전에 형성되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전전시기에 형성된 북한의 계급구조가 지금까지 그 기본틀을 유지해오고 있음에 비추어, 그것은 현체제의 시원을 드러내는 단서들을 제공할 수 있다.
그간 많은 연구자들이 북한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해석틀을 제안해 왔다. 노동당 중심의 지도체계 확립, 정치체제의 형성, 경제체제의 발전, 농업·공업부문의 관리체계 형성, 변혁운동을 통한 정치·경제·사회의 개혁, 체제 형성에 미친 소련의 규정력, 사회주의체제의 형성과정과 전후 사회주의 이행운동, 한국전쟁의 기원과 그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화 등을 다룬 연구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해 왔다. 체제의 골간을 이룬 핵심세력, 체제운영의 원리를 반영한 정치·경제·사회상, 체제형성의 주요 국면·계기 등에 주목한 기존 연구자들도 그들의 연구대상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현대 북한의 초석을 다진 결정적 요인이거나 계기였음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 연구는 그러한 요인들보다 인간 자체를 향한 새로운 관점의 등장 즉 계급적 기준에 따른 개인의 분류와 관리정책이 북한체제의 형성·발전과 38이북지역민들의 삶에 보다 근본적 영향을 끼친 요인이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계급성분에 좌우된 사회적 지위의 수직 이동성과 재화의 접근기회, 국가의 계급관·계급정책이 낳은 새로운 행동양식·가치체계·문화현상 등이 전쟁 이전에 체계를 갖춘 이래 38이북지역민들의 삶을 규정하는 요인들이 되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전쟁이 체제 공고화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함과 아울러 사회주의 이행의 속도를 끌어올린 촉진제로서 작용했음을 인정하지만, 이미 그 이전에 체제의 질적 전환을 이끌어낸 급진적 계급정책이 북한체제의 형성과 발전에 근본적 규정력을 발휘한 요인이었음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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