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북한 정보 아카이브>
Total  0

통일과나눔 아카이브 8000만

전체메뉴

학위논문

북한 사회주의건설과 ‘수령제 ’의 형성 과정에 관한 연구,1948-1972

상세내역
저자 정우곤
학위 박사
소속학교 경희대학 대학원
전공 정치학과
발행연도 1997년
쪽수 294p
지도교수 .
키워드 #정치학   #북한   #사회주의   #수령제
조회수 8
원문보기
상세내역
초록
이 논문의 연구목적은 북한 사회주의건설기(1948-72) '수령제'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는데 있다. 이 시기는 '사회주의건설기'에 해당되며, 사회주의국가로서의 통치양식을 확립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북한체제의 정통성확보와 더불어 수령제가 완성되는 시기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각 시기는 언제나 격변기라고 할 수 있지만, 특히 사회주의건설기는 흔히 말하듯 '혁명의 건설'이라는 과제에 직면하여 급속한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혁명과 건설의 결과는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과 행위양식, 규범과 도덕, 국가관 등의 사회관계와 제도적 틀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사회관계와 정치적 행위양식은 사회주의체제 가운데서도 독특성을 보여주는 북한의 '수령제'가 형성되는 통로서 역할했음을 의미한다. 수령제는 북한의 혁명과 건설, 급격한 사회변동과 발전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독특한 북한적 현상이다. 사회주의건설기 수령제의 형성과정을 중시하는 목적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수령제는 단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개인의 카리스마와 절대적 권위를 토대로 통치의 정당성을 합리화시키는 수령제 권력구조가 비간 북한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김일성이 출현하기 이전의 정치에서도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 정치에서도 이러한 권력현상은 존재하였지만, 그러한 정치체제와 통치리더십은 거의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문제는 개인의 카리스마적 지배가 불가능해 보이는 정치현실에서 왜 북한에서는 가능한 현실로 구체화되었는가에 있다. 그것은 수령제가 형성되는 역사적 공간속에서 구체화되었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둘째, 수령제가 장기간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다고 할 때 북한체제는 사회경제적인 발전과 함께 독재적인 기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다는 점이다. 즉, 사회주의건설 과정에서 북한체제는 최고지도자인 수령의 카리스마적 권위에 의해 통치되는 유일체제로 변화되어 왔다. 사회주의 건설은 경제성장 뿐만 아니라 국가와 당, 사회제도 등의 모든 형태가 형성되고 공고화되는 과정이었다. 셋째, 수령제가 개인의 카리스마와 권위에 의해 지배되는 권력구조라고 할 때 이는 맑스-레닌주의를 일탈한 '개인숭배'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국가인 북한에서 왜 이같은 개인숭배가 가능했던가? 그것은 사회주의건설의 합법칙성과 실현방도 등에 대한 수령의 지식독점을 바탕으로 당-국가-사회에 대한 지배권과 통치의 정당성을 스스로 내세웠으며 인민의 '동의'는 필요치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건설기의 수령제의 형성과정은 최고지도자의 '불가피한 임무'라는 차원을 넘어 극단적인 개인숭배를 결과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넷째, 수령제의 형성 시점과 원인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이 논문에서는 수령제의 형성 시점을 1960년대 사회주의 공업화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대내외적 위기극복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 1960년대 "체제한과 밖"으로부터 조성된 정세에 대한 북한식 대응전략으로 보고자 한다. 당시 합리적인 정치과정에 의한 의기극복과 체제보위 수단을 강구하기보다는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극단적인 개인우상화를 통한 수령중심의 유일체제를 강화시켜 나갔다는 점이다. 이같은 '수령제'는 독특한 북한적 정치현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건설기 수령제의 형성과정에 대한 분석과 설명이 전제될 때 북한체제의 특수성과 함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차별성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1948년 9월 정권수립후 북한체제는 사회경제적인 발전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의 특징을 지닌 동시에 당-국가체제위에 수령을 추대한 독특한 '수령제 정치체제'로 전환하였다. 다시 말해, '위대한 수령', '어버이 수령'이라는 용어에서부터 그것을 설명하고 정통화한 이데올로기, 수령을 중심으로 한 권력구조, 신화와 신격화, 역사해석권 독점, 신조체제나 문화예술에 이르기까지의 일관된 논리체계 등 그 모두 '수령'의 영도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체제가 만들어졌다. 1972년에는 이를 위하여 '사회주의헌법'을 제정하였던 것이며 헌법을 통해 보다 정통화되고 체계화된 북한체제는 모든 것에서 수령중심의 체계성을 갖춘 자기완결적이며 '예술'이라 할 정도의 완벽한 '수령중심 당-국가체제'로써 그 중심에는 항상 카리스마적 통치자인 수령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수령제의 형성에 미친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김일성의 권력적 동기 및 이데올로기를 지적할 수 있다. 북한에서 사회주의체제 수립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간의 연립정권의 형식으로 출범하였다. 이러한 연립정권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와해되기 시작하였으며, 권력투쟁의 고리를 전쟁에서 찾을 수 있었다. 즉, 집단지도체제의 형태를 강력한 단일지도체제로 재편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김일성은 수령제의 이념적 토대인 '혁명전통'의 강조와 '주체사상'을 파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사회주의건설과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한 강력한 지도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경제적 후과는 김일성으로 하여금 자립경제 건설을 촉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립경제는 곧 정통성, 안보, 경제발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현실인식에 의해 추진된 사회주의공업화는 결국 김일성 권력의 강화는 물론 수령제 형성에 한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대외적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전쟁을 경험한 북한으로서는 안보위기 의식이 항상 존재하고 대외환경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질 수 없었던 점은 자립적 사회주의 공업화라는 일종의 '전시공산주의'를 지속시켰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조성된 북한의 대외적 환경 즉, 중소분쟁의 심화, 월남사태 및 남북한관계의 악화는 수령제 형성을 가속화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60년대 형성된 남한과 미국, 일본의 '삼각관계'는 북한체제가 가장 경계하는 대외요인으로 인식하였으며, 체제보위에 대한 긴장이 전후 가장 고조되었다. 이같은 1960년대 북한을 둘러싸고 전개된 대외정세는 결국 수령중심 유일 체제를 확립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대외환경과 체제내적 긴장상태가 수령제를 성립시켰고 그것은 사회주의건설과 혁명안성의 목적으로 정통화된 것이다. 한편 북한의 수령제는 적지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체제의 '민주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수령제는 독제체제 또는 전체주의체제와 크게 다를바가 없다. 북한의 수령제를 비판하는 주요 논점도 여기에 있다. 나아가 주령제는 이념적 토대인 주체사상을 유일사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신정체제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스탈린주의적 국가체제를 지향했던 현존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동적인 상태에서 체제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반해, 북한만은 유독 정적인 상태에서 체제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북한체제의 폐쇄성에서 비롯된 단순한 특징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곧 수령과 당에 대한 충성이 체질화된 결과적 현상일수도 있다. 수령가 당외 교시나 정책노선을 집행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전투적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하물며 이러한 조건 위에서 사회의 다양성을 전제한 체제의 다원적 경쟁을 모색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껏 북한을 지배해온 수령의 교시나 당의 정책노선이 인민의 실질적인 공동이익을 집약한 공리가 아니라 수령과 당만을 위한 특수이익으로서의 사리였다는 데 있다. 즉, 개인숭배의 극단적인 폐해와 그에 따른 생산력 저발전의 문제는 현재의 북한체제에도 엄청난 진곡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취약점이 있는 것이다. 수령제는 권위의 인플레 현상과 정치우위가 적용되는 체제이다. '정치화된'(politicized)환경은 국가권위의 강화와 권력집중 현상의 결과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령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목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