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기성도를 연구주체 및 객체로 삼아 평양의 고적과 형승을 다룬 연구는 서로 다른 텍스트에 의존하면서도 특성 있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대부분의 평양의 대표적 경관 관련 연구는 미술사학이나 인문사학, 그리고 건축 등 역사지리적 관점에서 진행된 관계로 평양성을 중심으로 한 문루와 대표적 형승을 중심으로 진행됨으로써 자연경관에 대한 이해와 경관 해석은 많은 부분 부족한 감이 크다. 회고와 흥회의 감정을 촉발하는 고적과 경승 위주로 짜여진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지만 고적과 경승을 구성하는 세부 경물 등 경관 요소를 배제한 것은 심화된 경관연구를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자연과 어울린 역사문화 경관의 이해를 통한 평양 경관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과 분석의 미진함은 본 연구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대부분의 기존 연구는 특정한 그림 또는 지도에 초점을 모아 진행한 관계로 시문과 회화, 그리고 유사 도상 간의 비교연구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본 연구는 기존 평양기성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관연구의 동력을 평양팔경과 관련된 관점에서도 재고찰하고 해석함으로써 기존 평양성 관련 경관연구의 전환점을 삼고자 한다.
본 연구는 『평양지』와 『평양속지』의 <평양관부도>를 비롯하여 평양성 내외의 자연적, 인문적 경관과 풍정을 재현한 19세기 실경산수화 성격의 평양기성도인 여러 점의 일명 <기성도병>과 온양민속박물관과 평양역사박물관 소장의 《평양팔경도》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평양성의 고적과 형승, 그리고 세부 풍물의 양상과 유형을 다각도로 조명할 목적으로 시도되었다.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평양읍지』에 수록된 제영시의 소재가 된 평양의 주요 경물을 공서, 원정, 사묘, 고적, 산천, 형승, 그리고 누정의 읍지 항목으로 유형화되었다. 『평양지』와 『평양속지』, 조선인과 명나라 사신을 구분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파악해 볼 때, 산천, 형승과 같은 자연경관은 총 29.9%, 사묘와 고적의 역사시설 경관은 23.2%, 누정 등의 문화시설 경관은 약 42.7%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공서와 원정과 같은 관방의 경관 요소는 약 4.2%에 불과하였다. 결과적으로 역사문화경관은 총 267회(65.9%)로 나타난 가운데 역사경관으로 분류한 사묘에는 기자묘, 단군사, 동명왕사 등의 순으로 평양의 연원이 되는 사당과 묘가 중요한 경관 요소로 부각되었다. 또한 고적으로서는 기린굴, 조천석과 정전이 유명세가 높은 고적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평양팔경으로 회자되는 경관으로는 영명사, 을밀대, 부벽루, 애련당, 연광정의 5개 경관이 특히 부각되었다. 전반적으로 평양의 명승고적은 자연경관과 역사경관, 그리고 문화경관이 복합적으로 응축조화되어 평양의 경관성을 구축한 경향이 심화된 것으로 감지된다.
둘째, 평양은 조선 건국 직후부터 진행된 기자묘와 사당, 정전 유지 등 기자유적 정비를 통해 기자 존숭 의식이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평양기성도 제작이 보편화하기 이전부터 <평양관부도(1590)>나 <기전도(1607)> 등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정전 유지에 대한 관심은 이후 제작되는 평양지도에도 영향을 주어 17세기 이후 제작된 평양기성도에도 유전자처럼 뚜렷이 경관 요소로 삽입되었다. 더불어 평양기성도에는 단군의 사당인 숭련전을 비롯하여 동명왕의 유적인 구제궁과 기린굴, 조천석 등이 빠지지 않고 주요 경물로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역사성의 부름켜로 배태되어 온 역사경관 평양성의 흔적과 나이테를 짐작케 한다. 또한 양난 이후 강화된 관방의식과 더불어 숙종대 이후로 평양성의 재정비가 지속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성의 면모를 일신한 것 또한 평양기성도 제작에 일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평양기성도 화면은 평양의 자연경관과 역사문화경관으로 채워져 있다. 산, 하천, 섬, 기암, 벼랑, 여울, 숲 등의 천연 경관이 기본 골격을 형성하고 성곽과 감영시설을 비롯하여 고적, 누대, 사찰, 사우, 신단 등의 역사경관과 문화경관이 조합된 형국이다. 평양기성도의 기본적인 배치 기법은 남북으로 길게 뉘어 병풍 제작 의도에 부합되도록 하면서 위로는 용산과 잡약산 등 원산을 포치하고 아래로는 오른쪽 즉, 북측의 주암과 부아암에서부터 왼쪽 즉, 남측의 봉황대 합류점에 이르는 대동강 구간을 배치한 것은 도면의 시각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한편 평양성의 구조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판단된다. 또한 복음애, 음배현 등의 지명은 인근의 대취도와 함께 주암을 중심으로 술과 관련지어 생겨난 토속성 짙은 지명으로 파악된다. 《평양기성도》는 전체적으로 산과 하늘을 천으로, 성곽은 지로, 그리고 대동강을 인으로 한 천-지-인의 관념적 이상이 구현되는 특성을 보인다. 이와 같은 점을 종합해 볼 때 《평양기성도》는 평양의 자연경관과 인문경관의 섬세한 기록으로 점철된 ‘그림지도’이자 ‘역사기록’이라 할 수 있다. 산, 하천, 동굴, 섬, 기암, 폭포 등의 천연 경관이 기본 골격을 형성하고 공적 시설물을 비롯하여 고적, 누대, 사찰 등 역사문화경관이 종횡으로 조합된 형국의 그림으로 전형적으로 성 안팎의 넓은 경관을 포괄하는 부감형 전경도로서 북성-내성-중성-외성 그리고 성 밖의 세세한 경관까지도 담으려고 하는 치밀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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