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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이희완이 유서를 쓴 건 스물다섯 살 때다. 진해 해군기지에서 서해 2함대 접적(接敵) 해역으로 발령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유서를 썼다. “그땐 돌도 씹어먹을 만큼 호전적이었죠(웃음). 전투함 타고 적진을 향해 출동하는 장면을 동경했으니까요.”
그러나 머리카락 3개 넣어 밀봉한 유서는 이듬해인 2002년 6월 29일 바다로 가라앉았다. 참수리 357호정과 함께. 월드컵 3·4위전이 있던 날 발발한 제2 연평해전에서다. 북한 경비정이 기습적으로 퍼부은 포탄에 그는 6명의 전우와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국가보훈부 차관으로 임명된 날, 고등학생 딸이 말했다. “어릴 땐 아빠 다리가 다시 자라나는 줄 알았어. 매일 약을 먹으니까. 크면서 알게 됐지. 한번 잘린 다리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아빠가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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