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내용 |
[작가의 말]
젊은 시절에 ‘통일 화두’가 마음속에 잉태되어 평생 통일 업무에 매진하였다. 분단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으로서 민족 통일을 위해 인생을 바쳐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연과 동기로 인해 필자가 1977년 10월 제21회 행정고등고시를 합격한 후 1983년 5월에 통일부(당시 국토통일원)에 자원 입부하는 용기를 갖게 했다. 20대 후반에 통일부에 입부하여 우리 민족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청춘을 불사르겠다고 각오하였다. ‘통일 화두’를 움켜잡고 남북 관계 진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 그리고 평화통일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도전적인 자세로 일하였다. 되풀이되는 남북 관계의 진전과 후퇴, 화해·협력과 대결을 목격하면서 때로는 지치기도 했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의지로 통일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일해 왔다. 통일부에서 27년,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3년, 총 30년을 공적 기관에서 보냈다. 공적 기관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통일 화두’를 줄곧 탐구하면서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노력을 하고자 하였다. 북한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하면서 기회가 되는대로 북한을 직접 현지 체험도 하였다. 새로운 남북 교류협력의 장을 열어 확대하려고 했다. 인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북한 주민들을 위해 동포애적 마음으로 대북 인도적 지원도 하였다. 남북 당국 간의 주요 현안 과제를 풀기 위해 남북회담 대표단으로 참여하여 북한 측과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하였다. 남북한 간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이를 극복하고자 다각도로 노력을 다하였다. 남북 관계가 급진전될 때는 통일이 성큼 다가올 것 같은 희망과 흥분에 쌓이기도 했지만, 남북 관계가 후퇴하고 위기가 닥쳐올 때는 실망과 분노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전력을 다한 후 공적인 통일 업무를 마쳤다. 젊은 시절 ‘통일 화두’의 잉태 인연으로 공적 기관에서 새로운 ‘통일 화두’를 탐구하고 실천했지만 남북 관계는 필자의 희망과 열망대로 발전되지 못하였다. 필자의 통일부 초기 시절에 예측하기를 필자가 공적 기관에서 퇴직할 즈음 2010년대는 완전한 통일의 실현은 되지 못하더라도 사실상 통일에 가까울 정도로 남북 관계가 발전되어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남북 관계의 악화이고 불가역적인 후퇴의 길로 가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희망적 사고의 결과였다. 퇴직 후 민간인이 되어 공직에서의 무거운 중책감으로부터 벗어나니 한동안 너무나 자유로웠다. 그러나 재직 시에 업무상으로나 인간관계로 맺어진 인연으로 인해 민간의 통일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필자가 할 역할이 많았다. 민간 영역에서의 필자의 ‘통일 화두’에 대한 새로운 추구가 시작되었고 큰 보람을 느꼈다. 순수한 마음으로 통일 운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민간 인사들을 보면서 통일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 그렇게 민간 통일운동에 참여한지 10년이 되었다. ‘통일 화두’를 품고 공직부터 민간까지 추구하고 실천한 지가 올해로 총 40년이 되었다. 금년에 법정 나이 70세 칠순이 되었다. 필자는 칠순이 되는 시점에 지난 40년간 걸어 온 통일 여정의 길을 정리하여 책으로 발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필자의 통일 여정을 살펴보기 위해 순차적으로, 분야별로 기억을 더듬고 개인적으로 메모한 내용을 참고하고 관련 자료도 찾아보았다. 필자의 머리와 마음속에 강하게 각인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기로 하였다. 2013년 4~5월 개성공단 잠정 중단 사태 때 ‘마지막 7인’으로 귀환하여 핫뉴스거리가 된 일로 주변에서 3년 2개월 동안의 개성공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한 번 써보라는 권유가 많았다. 이번에 책을 내면서 개성공단에서의 자세한 경험을 포함하기로 하였다. 필자의 통일 업무 활동의 인생 회고록적 책을 출간하는 데는 북한연구소 측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다. 집필할 수 있도록 연구실을 제공해주었고 행정·재정적 지원이 있었다. 정영태·김희철·김영수·임채욱 소장과 서유석 박사, 최형욱 연구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책 원고 초안을 전부 읽어 보고 코멘트해준 통일부 출신 양창석·임병철·김충환 세 박사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특히 원고 초안을 여러 차례 정독한 후 문맥의 교정과 도움이 되는 의견을 상세히 제시한 필자의 처 이복희 교수에게 고마움과 마음의 빚을 품고 있다. 칠순의 시점에 ‘통일 화두’ 잉태와 탐구, 실천의 40년간 통일 여정의 정리는 이것으로 필자의 통일 인생을 마무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번 회고록적 정리는 40년간 통일 여정의 인생을 한 번 매듭짓고 나서 앞으로 여생을 또 다시 ‘통일 화두’를 재장전하고 줄기차게 나아가고자 스스로 다짐을 해보기 위함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통일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민간 인사들을 존경하며 함께 동행하고자 한다. 미래 통일의 비전을 머리와 가슴에 담고 준비하고 도전하는 젊은 세대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한다. 부정적인 통일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순수한 민간 통일운동이 우리가 바라는 미래 통일의 의지와 희망이다. 최근 북한 측이 남북한은 ‘하나의 나라가 아닌 별개의 두 개의 나라’라고 선포했지만 통일은 함부로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우리나라와 후손들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통일 화두’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끝으로 필자가 개인적으로 오늘날까지 통일 업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준 부모님(부친은 작고)과 가족들에게 지면을 통해서라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앞으로 어머니를 비롯하여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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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추천의 글
책을 내면서 1부 젊은 시절, 통일 화두 잉태와 통일 인생 2부 정부에서의 통일 화두 추구 통일 업무를 위해 북한 공부부터 통일부 조직 역량 강화가 필요 1990년대 초 교류협력국 신설과 남북 교류 진전 남북 여성 교류 행사 남북 교류협력 관련, 남북한 접근 방법의 차이 남북 이산가족 교류와 한계 남북고위급회담, 합의 사항 이행의 무산 북한의 협상 행태 김영삼 정부에서의 남북 관계 딜레마 비전향장기수,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북한이탈주민 문제와 통일정책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경수로 사업 경수로 현장에서의 사건·사고의 사례들 경수로 사업의 촉진 요인과 억제 요인 나의 경수로 사업 마지막 활동, 사업 중단과 소회 대북 인도적·경제적 지원과 정책 논쟁 워싱턴 D.C.에서의 객원연구원 생활 미국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 상근회담대표로서의 활동 남북 군사회담의 이슈들 나의 기획관리실장 시절 3대 업무 과제 남북 체육회담 대표 노무현 정부 말, ‘남북정상회담’과 ‘적십자회담’ 등 경험 통일부 차관으로서의 첫 한 달 통일부 폐지론 차관 재임시 남북 관계 전개 과정과 분석 차관 재임 시 발생한 잊을 수 없는 사례들 남북정상회담 추진 관여 3부 공공 기관에서의 통일 화두 추구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겸 관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면서 우리 기업, 주재원들과의 협력 체계 구축 개성공단에서의 북측의 입장·태도 개성공단 ‘잠정 중단’ 위기 상황의 전개 과정 개성공단 생산품 반출과 진풍경의 수송 행렬 우리 측의 개성공단 전면 철수 조치 개성공단 재가동 4부 민간에서의 통일 화두 추구 공직 생활 마감과 대학에서 강의로 새 출발 나의 통일 강의록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한 인식 변화와 교훈 분야별 남북 통합 과제 연구 민간 통일단체 참여 활동 5부 끝 맺음: 새로운 통일 화두 모색 김정은의 두 개 국가론 최근 통일 환경의 진단과 우리의 자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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