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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 김정일이 아꼈던 세 명의 인민배우와 얽힌 각별한 비하인드 스토리
북한에서 경험한 김정일과 영화계 이야기를 담은 김병관 작가의 실화 장편소설 『영화광 김정일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출간되었다. 김현숙, 우인희, 성혜림 등을 김정일 위원장이 특별히 아꼈다. 북한 인민배우로 추앙받았던 세 여성들과 영화계의 각별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펼쳐진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 위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광이다. 196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사망 전까지 김정일은 북한에서 상영된 영화의 기획, 배우, 촬영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직접 검열, 지도했다. 특히 〈벗들이여 우리와 함께 가자〉의 김현숙, 〈춘향전〉의 우인희, 〈분계선 마을에서〉의 성혜림 등 세 명의 여주인공이 김정일 위원장과 얽히게 된 각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로 북한에서 철도기관원 등의 직장생활을 했던 김병관 작가가 만났던 영화배우들, 그리고 지인들의 목격담과 수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작가적 시선으로 포착했다. 김정일이 개인 신분으로 영화촬영소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61년 7월 부친 김일성을 따라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와 대학생이 된 그해 가을이었다. 이종순 시나리오, 천상인 연출의 〈벗들이여 우리와 함께 가자〉의 촬영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현숙은 연기는 물론 매력이 넘치는 여주인공이었다. 이곳을 시작으로 김정일이 눈여겨본 여주인공 세 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김정일이 예술영화촬영소에 정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였다. 당시는 경호원과 당중앙위원회 지도원(부원)이 서기로 동행했다. 촬영소에는 사무실도 있었고 간소한 침실도 꾸렸다. 그때부터 예술영화촬영소에는 부비서 직책만 있었다. 당비서는 사실상 김정일인 셈이다. 모든 영화사업은 김정일의 지도와 비준을 받아야 했다. ● 김현숙 우인희 성혜림 세 여인의 배우생활의 연도를 돌아보자. 김현숙은 1953년 6·25전쟁이 끝나면서 영화촬영소 현지에서 입문한 중학교 졸업생이었다. 집이 근방이라 촬영소 주변에는 늘 아이들이 서성였다. 그들 중 눈에 짚이는 처녀가 17세 김현숙이었다. 영화인들이 그를 불러 몇 동작을 찍어 돌려보니 배우로 품이 있었다. 특히 앞으로 가면서 뒤로 돌아서 웃어보는 모습이 귀엽고 아름다웠다. 인물이 잘나고 신체가 좋다고 영화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실물과 배우의 동작은 별개의 현상이다. 그해 가을 윤두근 시나리오, 강홍식 총괄지도로 제작된 영화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에서 마을 처녀로 등장한 것이 그의 첫 배우생활이었다. 영화촬영소 주변이 순안지구에서도 외진 곳이라 마을과 떨어져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좀 떨어져 철도종합병원이 있어 치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김정일이 영화촬영소를 지도하면서 그 주변 지역이 평양시 형제산 구역으로 편입되었다. 그 전까지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평안남도 순안지구의 한구석이었다. 우인희는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개성으로 자리를 옮겨 작은 여관업을 시작하면서 개성사람이 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남쪽 행정구역이었다. 그 지역이 판문점으로 되면서 북쪽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그는 남쪽 출신으로 기록이 남는다. 출신 지역을 정치적으로 분류하기에 북쪽 출신인가 남쪽 출신인가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의 어머니는 해방 전 서울에서 연극배우로 명성이 있던 황철과는 알고 지내던 사이었다. 전쟁이 끝나 황철이 개성으로 내려가 중학생 우인희를 데려다 국립연극극장 부속예술학교 사무장이던 나웅에게 맡겼다. 처녀애가 제 엄마처럼 넓은 이마에 눈이 크고 시원스러웠다. 동작이 침착했다. 말이 적으면서도 웃어보는 유연한 눈길은 느낌이 좋았다. 연출가 박학은 〈춘향전〉 시나리오를 들고 교육성 부상 겸 국립연극극장 총장 황철을 찾아갔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춘향이기는 해도 변학도의 인물 비중이 컸다. 그 인물로 황철을 짚고 부탁하려고 온 듯했다. 당시 황철과 박학의 사회인격은 하늘과 땅 차이었다. 그는 흔쾌히 수락하면서 춘향의 인물을 누구인가 물었다.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하자 “그런 아이가 있소” 예술학교에서 만나보라고 했다. 그렇게 선정된 인물이 우인희였다. 1956년부터 실기연습을 하면서 영화촬영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최초 〈춘향전〉이다. 영화가 나왔을 때 우인희는 20세의 아름다운 처녀였다. 성혜림은 어머니 김원주의 주선으로 서울에서부터 알고 있던 예술학교 사무장 나웅에게 이야기하여 어렵지 않게 입학할 수 있었다. 학교가 연극영화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재학 중에 가정이 이런저런 이유로 복잡했을 때 김원주가 연출가 박학에 부탁하여 영화 〈분계선 마을에서〉 주역으로 선정됐다. 데려다 실기를 시켜보니 농촌 여인의 소박한 품이 좋았다. 영화는 남북 현실을 주제로 한 것이어서 시대상으로도 적절한 작품이었다. 김원주와 박학은 해방 전 서울에서 깊은 사이는 아니라도 좌익운동으로 알던 사이였다. 1948년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연석회의에 박학은 김일성의 초청으로 참가했다, 평양 출신이라 그대로 눌러앉았고 김원주는 남조선민주여성 대표단으로 참가했다. 그런 인연도 있었지만 김원주는 노동신문 국제면 편집주간으로 여성 최초로 신문편집의 실력자였다. 김현숙(1953년), 우인희(1956년), 성혜림(1958년)은 거의 같은 시기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배우생활을 시작해서 서로 의지하는 친근한 사이였다. 오랜 선배들인 문예봉, 김효정(오병초의 전처)들이 김정일의 퇴출로 철도연극단으로 좌천됐을 때 그들은 연극단에 찾아가 위로의 인사를 하기도 했다. - 「2 영화 시사회」 중에서 ● 내가 영화배우 김현숙을 처음 만난 것은 우연이다. 1961년 11월 평양철도 보통강역이었다. 집이 근처여서 남포에서 들어오는 열차를 타고 평양역으로 출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몇 달 전 영화 〈벗들이여 우리와 함께 가자〉의 주역으로 명성이 있었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영화에서처럼 반 군복차림에 어깨를 스치는 중 단발머리의 모습이 20대 중년이라도 여고생 같은 매력이 넘치면서도 다정한 여인이었다. 영화인들은 자신을 단련하는 혁명화의 기회로 기양트랙터공장 확장공사를 지원하려고 매일 남포 방면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책을 보는 것이 눈에 띄었는지 학생으로 생각하고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남포 방면, 나는 평양역 방향으로 서로 엇갈려 떠나지만 우리는 아침마다 그 시간에 만나면서 가까워졌다. 영화배우 우인희를 만난 것은 1962년 3월이었다. 그녀는 국립연극극장 총장이며 연출가 겸 예술학교 교장이던 황철이 개성에서 데려왔다. 어머니가 딸을 만나려 평양에 오면 내려가는 열차표를 구하기 어려웠다. 전쟁이 끝나기는 했어도 사회생활 전반이 어수선하던 때라 열차표는 암표상들이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평양역은 당시 환경에서는 엄청 큰 건물이었다. 누가 찾아왔다기에 역사 밖으로 나가니 키가 훤칠한 여인이 손편지를 준다. 받아보니 중학교 동창이 부탁하는 소개로 우인희라고 적혀 있었다. 목수건으로 얼굴을 높이 가려 알아볼 수 없었다. 수건을 벗는다. 영화 〈춘향전〉의 우인희였다.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았어도 첫인상이 어딘가 은근히 우아했고 느슨히 웃어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서울, 나는 전라남도 순천, 같은 남쪽 출신이라는 의미였는지 우리는 그렇게 점차 가까워졌다. 영화배우 성혜림은 1964년 5월로 기억된다. 그녀도 영화촬영소에 있는 중학교 동창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첫인상이 영화 〈분계선 마을에서〉처럼 수더분한 농촌 여인의 모습이었다. 얼굴색이 밝고 화려하지 않아도 웃어보는 눈길이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예감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나이보다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마스크(얼굴)도 멋진데 왜 연기를 안 했어요?” 그런 이야기는 1957년 연출가 천상인이 배우 유원준과 같이 연출작업용 풍차를 타고 나를 누구의 아역으로 쓰겠다고 아버지를 찾아왔었다. 부친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 집안 내력이 보수성이 강했다. 나의 생활에서는 그런 일도 있었다. 그런 이유가 후일 영화인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후일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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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1 어머니의 모습 · 9
2 영화 시사회 · 20 3 회한의 눈물 · 35 4 개자식 · 52 5 사랑의 이별 · 70 6 유부녀의 수 · 84 7 누구의 아들인가 · 99 8 1호 말씀 · 110 9 여인의 심정 · 120 10 사상투쟁 · 141 11 바람이 분다 · 165 12 음탕한 자의 보복 · 183 13 무언의 저주 · 202 14 종장 · 212 후일담 · 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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