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都城의 築造過程에 대한 檢討 -高句麗 平壤城(長安城)과 漢陽都城의 축조를 중심으로-
...순으로 축조되었으며, 한양도성은 궁궐, 성곽, 궁성 순으로 축조하여 궁성보다 시급한 성곽을 먼저 축조하였다. 이처럼 新都의 건설에서는 왕의 居所인 王宮이 먼저 축조되게 마련이었다. 신도의 위치가 정해지면 한양도성처럼 먼저 宮闕, 宗廟, 社稷壇이 조성될 장소를 정하게 되고, 이어 도성민을 보호할 성곽의 基地를 정하게 된다. 작업 규모면에서 고구려 평양성의 각자성석에 새겨진 축성집단의 수작거리는 里를 단위로 하는 대규모라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步를 단위로 하는 소규모인 신라의 축성비와는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서도 고구려다운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役夫들의 성격문제에서 고구려 평양성의 축조에는 동원된 役夫들에 대한 자료는 없다. 한양도성에서는 농민부역군인 民丁(烟軍)이 調發되었다. 민정이 조발된 만큼 농사에 지장을...
[학술논문] 平壤城 發掘의 成果와 課題
...자료가 거칠고 불분명한 점이 있어서 성벽의 축조 방법이나 시기를 파악하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 평양성은 모란봉 일대의 산지에서 평천구역의 평탄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둘러싼 규모가 큰 성이며, 북성과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이다. 때문에 구간별로 서로 다른 기법으로 성벽을 축조하였으며, 축조 시기도 서로 다를 것이다. 발굴조사 외에 각자성석의 분석을 통해 축조 시기를 규명하기 위한 논의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성벽에 대한 정밀한 발굴조사가 가장 요구되는 측면이다. 현존하는 성벽과 문루 등의 시설물의 경우도 고구려 시기는 물론 후대에 개축된 것이 상당한데, 이에 대해서도 자세한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내성에 위치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궁전지를 비롯한 성내의 다양한 시설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