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朝鮮後期 正祖 末~純祖 初의 政局과 通共政策
...‘병오통공’ 11년(1787) ‘정미판하’를 추진하며, 금난전권 행사의 범위와 물종에 대해 논의ㆍ釐正하였던 것이다. 정조 15년(1791) ‘辛亥通共’은 노론 김문순·소론 이치중·남인 채재공 등이 참여하였고, 당시의 육의전은 立廛[=縇廛]ㆍ綿布廛ㆍ綿紬廛ㆍ紙廛ㆍ紵廛v內魚物廛+靑布廛이었다. 정조 18년(1794) ‘甲寅通共’은 노론 김이소ㆍ심이지, 소론 이시수ㆍ구익, 남인 채제공 등이 참여하였고, 당시의 육의전은 立廛ㆍ綿布廛ㆍ綿紬廛ㆍ布廛ㆍ紵廛ㆍ紙廛이었다. 정조 24년(1800)에 禁亂廛權의 복구를 요구하는 어물전 시민의 소요가 일어나자, 순조 1년(1801) ‘辛酉通共’이 시행되었다. 순조...
[학술논문] 朝鮮後期 正祖代의 政局과 市廛政策 -貢市人詢瘼을 중심으로
...수원에 현륭원을 천봉하였고, 정조 14년(1790) 수원에 시전을 설치하였다. 이 때문에 서울·수원市廛과 송파·누원·수원 場市[=鄕市]의 대립이 발생하였고, 정조 15년(1791) 6의전 외 일반시전의 금난전권을 혁파하는 ‘신해통공’을 실시하였다. 정조 18년(1794) 6의전 안에서 어물전과 청포전의 1주비를 빼고, 포전을 넣는 ‘갑인통공’을 실시하였다. 영조 후반 정조년간에 시행된 공시인순막을 통한 시전정책의 시행으로 市廛[=京市]과 場市[=鄕市]간의 대립이 해소되었고, 금난전권 행사를 축소·완화하는 통공정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정조는 정치적으로는 노론·소론·남인의 준론세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