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세기말 戶籍表로 본 平安南道 順川郡 戶의 구성
...직계가 아닌 傍系 가족도 4%에 불과했다. 순천군에서 보이는 ‘父系直系’ 위주의 가족 구성 원리는 당시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는 일반적인 경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 지방에 국한한다면 순천군 주민들의 경제적 수준은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추정은 경제력과 비례하는 1인당 가옥 규모를 통해 가능했다. 순천군 주민 직업의 특징으로는 상업 종사자가 11.8%에 달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들 상인들은 농업 종사자보다 평균적으로 1.19칸 넓은 가옥을 소유하고 있었다. 순천군에 상인이 많았던 것은 그곳이 교통의 요지이자 물자의 집산지였기 때문이었다. 상업 인구가 많고 교통이 발달한 곳이어서인지, 당시 한반도에 넓게 퍼져 있었던 동족촌락은 1곳에 불과했다.
[학술논문]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목, 鐵原— 물길은 뚫려야 한다!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는 鐵原은 일찍이 그 지정학적 중요성을 간파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京元線이 부설된 교통의 요지이다. 경원선은 조선후기 이래 전통 교역로인 三防路(추가령 구조곡)를 따라 철원평야 일대를 남북으로 관통했던 것인데, 당시 개항장인 元山을 경유해 일본 ‘內地’에 이르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철원 현지에는 철의 삼각지, 백마고지, 피의 능선 등 한국전쟁 때부터 익히 알려진 격전지가 DMZ 일대에 펼쳐져 있는데, 지금도 남북한 군사전력의 상당량이 경원선의 철도라인을 따라 집중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엄중한 ‘휴전’상태에서 철원의 역사문화 및 자연 유산을 활용한 미래 ‘평화신도시’의 조성은,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 양측의 정치・군사적...
[학술논문] 평안남도 중화지역 3․1운동의 전개와 참여자 분석
이 글은 평안남도 중화지역 3.1운동을 검토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중화군은 대한제국기 중화군과 상원군이 합쳐진 지역으로, 북쪽으로는 대동군 및 강동군, 서쪽으로 강서군과 용강군, 동쪽과 남쪽으로 황해도에 접한 곳으로 서울과 평양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였다. 이 같은 배경에서 중화지역은 일제 강점 이전부터 각종 침탈이 중첩된 곳이며, 그로 인해 일찍이 다양한 국권회복운동이 전개되었다. 또한 중화지역에는 천도교와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중화지역의 3.1운동은 3월 1일 선언서가 전파되면서 본격화되었다. 3월 1일부터 시위가 시도되었고, 3월 2일부터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중화지역의 3.1운동은 천도교와 기독교의 밀접한 협력 속에서 4월 중순까지 지속되었으며, 실제 12건가량의 운동이 제한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