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申采浩 前後三韓說의 의의
신채호는 단군조선이 신조선(眞朝鮮) 곧 진한, 불조선(番朝鮮) 곧 변한, 말조선(莫朝鮮) 곧 마한으로 나누어졌고, 이들 일부가 남하하여 한강 이남의 삼한을 형성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전후삼한설이라고 하는데, 일제시기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해방 이후 남북한 학계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 글은 신채호가 전후삼한설을 구상하게 된 경위와 의의를 검토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신채호는 1908년 발표한 『독사신론』에서 부여족이 남하하여 한강 이남의 토족(土族)을 정복 혹은 흡수하여 백제, 신라, 가야를 건설하였다고 보았다. 이는 전삼한의 주민이 남하하여 후삼한을 건설하였다는 논리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전후삼한설의 원형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 실학자...
[학술논문] 현행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역사 부도의 삼국시대 지도 검토
4세기 백제의 세력범위와 대외활동 지도에서는 근초고왕대 마한 잔여세력의 복속 표시 문제, 백제의 요서 진출과 대외교류 문제, 耽羅의 백제 복속 표시 문제를 검토하였다. 모든 교과서와 역사 부도에서 백제가 근초고왕대 마한의 남은 세력을 정복해 전라도 지역을 차지했다고 서술하며 이를 지도에 표시하였다. 그러나 최근 학계의 연구동향과 고고자료의 출토 양상을 고려할 때 백제 영역 확장사를 계기적으로 볼 수 있도록 유연한 서술을 할 필요가 있다. 백제의 요서 진출은 집필기준 때문에 학계에 논란이 있다는 점을 부연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이 역사적 사실로 인식하게끔 본문 내용과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백제의 요서 진출을 인정하는 최근 연구성과는 드물고 그나마도 근초고왕대가 아닌 385년이라는 제한된 시기로...
[학술논문] 북한의 가야사 연구현황
...임나일본부설을 해체하고, 조‧일관계사를 명확히 해명함으로서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조선(한반도)-왜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셋째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역학관계에서 고구려 중심사관으로 가야의 형성과 존재를 해명하는 것이 과제였다. 분국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5세기 초까지도 일본은 수십 개 소국이 분립되어 있었으며, 이들 소국 중에는 마한․진한․변한의 삼한과 백제․신라․가락 계통의 소국들이 본국에 대한 분국(分國)의 형태로 존재하였다는 학설이다. 북한의 가야사 연구성과는 가야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기원전 1세기경에 고조선 유민들이 남하하여 진국에 속한 변한지역에 구야 봉건소국을 세웠다. 1세기 초엽에 북쪽으로부터 남하한 김수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세력이 구야...
[학술논문] 남한지역 무기단식 적석묘의 전개양상과 축조집단에 대하여
...자료와의 비교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각 유역의 적석묘와 인근 취락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3세기대부터 임진강 유역에서 등장하여 점차 북한강 유역, 한강 하류, 남한강 유역으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정선 아우라지 적석묘의 경우에는 6세기대까지도 그 전통이 남아있었음이 확인된다. 무기단식 적석묘의 축조집단에 대해서는 고구려, 백제, 예, 마한 등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어느 특정 종족이나 집단이라고 비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적석묘가 조영되는 과정에서 백제와 신라의 중앙 문화가 유입됨에도 불구하고 적석묘 축조 전통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 백제, 신라와는 달리 무덤에 돌을 전통적으로 사용하였던 예계(濊系) 문화권의 ‘현지세력’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학술논문] 시베리아의 土着人들과 한국문화의 기원(Ⅰ)
...people, Palaeosiberian: 니비크(니브흐, Nivkh, Gilyak), 유카키르, 이텔만, 캄챠달, 코략, 축치 등] 중 니비크(니브흐, 길랴크 )⟶‘신 시베리아’/퉁구스[Neosiberian/Tungus: 예벤키(鄂溫克), 에벤, 라무트, 사모에드, 우에지, 브리야트(Buryat, 布里亚特), 골디(Golds, Goldi, a Nanai clan name, Hezhen, 허저/赫哲) 등]⟶濊貊 퉁구스→고조선과 부여→마한, 변한, 진한⟶고구려, 백제, 신라로 이어 내려오는 계통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이들 ‘신 시베리아’ 혹은 퉁구스인들 중에서 바이칼호 근처에 사는 브리야트인들이 오늘날의 한국인의 DNA와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