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50년대 번역 장의 형성과 문학 번역 ― 국가권력, 자본, 문학의 구조적 상관성을 중심으로
한국번역(문학)사에서 1950년대는 번역의 장이 문화제도적으로 조형된 최초의 연대이다. 번역이 사회문화 전반의 핵심 의제로 제기된 가운데 공론의 장에서 나름의자율성을 지닌 국가권력, 출판자본, 문화주체 등이 문화적 후진성에 대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각기 분명한 의도와 실행력을 갖춘 인정투쟁을 전개하면서 번역의 제도화가이루어진 것이다. 국가권력은 근대화기획의 일환으로 외국도서수입과 도서번역사업을추진했다. 특히 ‘외국도서번역사업 5개년계획’(1953~57)을 통해 152권의 외서를 완역하고 94권을 출간함으로써 기초 학술자료에 목말라하던 교육계와 실수요자들에게근대적 지식을 공급하는데, 자본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설파하거나 미국대학에서 교재용으로 사용된 이론서가 주종을 이루었다. 외서의 官給的 번역
[학술논문] 오영진과 반공․아시아․미국 -이승만 전기극 <청년>․<풍운>을 중심으로-
...북한과 미 군정하의 남한을 모두경험한 이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다. 오영진은 해방 직후 평양의 민족지도자 조만식의 조선민주당 창당 과정에 참여했으며 1947년 월남한 이후 1952년 전시 부산에서 월남 문인들을 중심으로 문학단체를 조직하는가 하면 반공서적 전문 출판사를 설립했으며, 1953년 미 국무성의 리더스 그랜트로 미국을 다녀온 이후 1955년 미 공보원과 공동으로 반공영화를 제작하는 등 1950년대 내내 ‘반공 전사’, ‘반공 이데올로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영진은 서북 출신 기독교인이자민족주의자로 전후 냉전 체제, 특히 미국 중심의 세계 반공 질서에 적극 동의하고 있었다. 오영진은 1960년대의 ‘동원된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학술논문] 냉전과 월남지식인, 냉전문화기획자 오영진 - 한국전쟁 전후 오영진의 문화 활동
...촉진/ 제약된다. 오영진은 가장앞서 세계자유문화회의, 유네스코 등 전후 문화냉전 전을 수행하고 있던 세계적 냉전문화기구들과의 협력채널을 개척하여 연대를 모색했다. 이 채널을 통해서 최신의 서구 냉전문화를 수용하여 특유의 냉전문화론을 정립하는 한편 이를 자신이 관장한 미디어를 거점으로효과적인 인정투쟁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문화 권력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또한 미공보원, 미극작가협회, 아시아재단 등 다양한 경로로 미국과 접속해 물적, 인적, 사상적 후원을 받게 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문화냉전 전이 가능했다. 이로 볼 때 오영진은 한국의 냉전문화연구의 유효적절한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오영진의 냉전문화기획이 가장 돋보인 것은 전향공간에서 그가 기획․총괄한 한국문화연구소 주최의 종합예술제 개최이다. 이 종합예술제는 문학예술계...
[학술논문] 영화인의 부역과 냉전 한국영화의 형성
기술 인력의 부역 문제와 관련해서 특히 주목할 것은 미군정의 통치와 한국전쟁이라는 열전의 효과다. 일제의 전체주의적 통치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미군정의 통치와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는 8년 동안, 한국에서 영화는 식민 말기와 마찬가지로 (준)전시상태에 놓여 있었다. 생산수단의 국가 장악, 전쟁수행을 위한 도구로서의 영화의 위치, 제작 산업의 극도의 부진 같은 조건들이 지속되면서 전시 뉴스릴과 다큐멘터리를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인력이었던 기술자들을 중심으로 한, 동질적인 역사적 경험을 가진 소규모 집단이라는 영화계의 성격은 유지되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전후에 한국영화가 구조적 변동을 겪게 되면서부터다. 1950년대 후반 동안, 미국의 원조에 힘입은 영화제작의 물적 토대 구축과 자원의 분배에 따른 극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