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주변부의 근대-남북한의 식민지 반봉건론을 다시 생각한다-
‘식민지=근대’라는 식민지근대론의 원점으로 돌아가 식민지를 서구와 아시아라는 이질적인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는 장소로서 파악한다면, 1980년대 한국의 지식계를 강타했던 식민지반봉건론의 문제의식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두 이론은 근대 혹은 자본주의의 비대칭성, 불균등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벌어진 ‘중국통일화논쟁’의 핵심은 식민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근대화론 혹은 식민지탈화론의 입장이었고, 오카미 스에히로의 논의는 식민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정체론에 가까웠다. 나카니시 쓰토무는 양자를 비판하면서 반식민지의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의 제국주의의 이중성과 그에 따른 민중의 저항에 주목하였다. 식민지조선의
[학술논문] 金炳淵(1896~1965)의 해방 후 『평양지』 편찬과 민족주의적 식민지 기억의 차질
...후 10년 간 초대 이북5도청 평안남도지사를 지냈다. 간행회는 식민지기 평양의 사회운동가들과 언론계 인사로 구성되었고, 동향 기업가들의 후원을 받았다. 식민지기 자신들은 안창호와 조만식 영도의 “민족자본” 육성과 “근대평양” 건설을 주도했으며, 민족 각성의 선구자였다고 했다. 이 관점을 중산층 사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하평양부는 어떤 도시보다 조선인이 부(협의)회를 통해 ‘식민지 개발’의 과실을 향유했다. 북한 향토지나 훗날 한국의 식민지기 연구는 부(협의)회참여를 친일이라 했다. 따라서 일제하 평양 로컬리티의 민족주의적 재현은 해명되거나, “민족자본” 육성과 긴밀했던 부(협의)회 기억을 소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