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조선후기 남한산성의 조영과 승군의 활용
...경제적 부담이기는 했지만 한편 승려 자격과 활동이 용인됨에 따라 불교의 인적 재생산과 존립이 가능해지는 계기이기도 했다. 승역의 제도적 운용은 전란 후 양인 노동력의 부족을 메꾸기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서 국가의 부역 및 조세 정책과 연동되어 전개된 것이다. 조선후기 승군 제도의 운영과 승역의 확대는 인조대에 남한산성의 조영과 방비에 승군이 활용되고 벽암각성碧巖覺性이 팔도도총섭으로 임명되면서 제도화되었다. 남한산성은 임진왜란 때부터 서울의 보장처로서 주목되었고 후금後金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1624년부터 1626년까지 축성이 이루어졌다. 이때 다수의 승군이 동원되었고 팔도도총섭의 주관 하에 성내 사찰에 승군이 상주하면서 방어를 담당하게 되었으며 이후 북한산성北漢山城의 축성과 승군 운용이 남한산성을 모델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