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김정희의 문화운동과 금석학
...여기에서 김정희의 사상적 역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를 평가할 때,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라는 칭호가 따라붙는데, 왜 이러한 이야기가 한꺼번에 거론되는지 알아야 한다. 사실 그 셋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해의 관건은 바로 ‘금석’(金石)이다. 김정희가 금석학을 만나게 된 동기는 역사적으로 분명하다. 조선이 한참 북학열(北學熱)에 달아올랐을 때 이야기다. 1809년(순조 9) 24세 때 생원시(生員試)에 장원하면서, 아버지 김노경(金魯敬)이 동지겸사은사부사(冬至兼謝恩使副使)의 자격으로 북경으로 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자제군관(子弟軍官)의 직분으로 따라가게 된다. 이 때 김정희는 47세의 완원(阮元: 1764-1849)과 78세의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