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眞興王代 新羅의 北方進出과 對高句麗 領域向方
신라 眞興王(540~576)은 553년에 백제로부터 한강 유역을 탈취한 후 영역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巡狩를 추진하였다. 진흥왕은 먼저 555년 10월에 北漢山에 巡幸하여 지역 내 민심을 위무하였다. 556년 7월에는 比列忽州[강원도 안변]를 설치했고, 다음해에는 기존의 新州를 폐지하고 北漢山州를 두었다. 이를 통해 진흥왕은 군사적 거점을 한강 이남에서 이북으로 전진 배치하였다. 진흥왕의 북방 순수는 568년부터 본격화되었다. 진흥왕은 곧 568년 3월~6월에 북한산 비봉에 올라 비문을 세웠고, 철령[양주-포천-영평-김화-회양-철령] 또는 추가령구조곡[양주-연천-철원-평강-분수령]을 경유한 후 안변을 거쳐 8월에는 황초령 10월에는 마운령까지 巡狩를 갔다. 결국 553~568년 신라의 北進線은 한강 하류 유역의...
[학술논문] 현행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역사 부도의 삼국시대 지도 검토
...좀 더 세심한 고증이 필요하다. 6세기 신라의 영토 확장 지도에서는 진흥왕대 동북방 진출의 범위와 영역 표시, 그리고 순수 경로 문제를 고찰하였다. 진흥왕은 568년에 함흥평야 일대에까지 순수를 단행한 후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를 세웠다. 그러나 진흥왕은 순수를 마친 직후 함흥 일대의 지리적인 조건이 고구려의 반격에 취약함을 알고 최전방 군사기지를 비열홀주[안변]에서 달홀주[강원도 고성]로 후퇴하였다. 여기에 최근 학계의 연구를 감안해 일부 교과서와 부도가 안변 이북지역을 ‘진흥왕 때 진출했다가 상실한 영토’로 구별해 표시하였다. 아직 이를 반영하지 않은 지도는 수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다수의 교과서와 역사 부도에서 568년 진흥왕의 동북방 순수 경로를 동해안 일변도로 표시하였다....
[학술논문] 삼국시대 비열홀 지역 관방시설 연구
...재검토하고, 입지에 주목하여 나머지 관방시설의 성격도 유추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와 신라의 길항속에서 비열홀 지역의 점유 세력의 변화를 관방시설과 함께 분석하였다. 6세기 중후반 신라의 진출 흔적은 서곡산성과 고산산성에서 확인되었다. 추가령-삼방곡을 통하여 신주와 동해를 연결하는 교통로의 입지와 주변 유적의 관계를 통하여, 568년에 설치된 신라 비열홀주와 668년의 재설치된 비열홀주의 치소도 서곡산성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한편 636년을 전후하여 고구려가 비열홀을 장악하고, 666년에 연정토가 투항한 지역의 중심치소는 학성산성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학성산성과 고산리 성지 인근에서 출토된 철제 기마모형의 공통점에 주목하고, 고구려 관방시설의 특징이 확인되는 학성산성과 철령의 고산리 성지주변 관방시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