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지리산권 빨치산의 형성과 활동
한국 사회와 현대사에 강력한 규정력을 행사해 온 한국전쟁의 기저에는 기록되지 못한 수만의 빨치산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해방 후 미군정 3년 동안 일어났던 크고 작은 소요를 둘러싼 갈등과 억압이 치안문제 차원에서 전개되었다면, 1948년 하반기부터는 정부 수립과 여순사건을 계기로 국가에 대한 ‘반란’과 ‘토벌’이 첨예하게 펼쳐졌다. 1948년 10월 이전에도 산악 지역에서 남로당의 ‘야산대’가 존재했지만 빨치산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공간적 배경은 지리산 일대였다. 지리산이 빨치산들의 유일한 활동 지역은 아니었으나 매우 유력한 활동의 근거지였다. 최종적으로 지리산은 모든 빨치산 활동이 종료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 조직과 활동은 크게
[학술논문] 북한의 항일서사 연구시론
...고찰했다. 즉 해방공간에 있어서 김일성을 건국의 주인공으로서 ‘영웅서사시’와 주체시대에 있어서 유일사상체계를 수립에 있어서 김일성 신격화와 우상화 작업으로서의 ‘영웅서사시’를 고찰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북한에서의 항일서사는 김일성을 둘러싸고 그의 정치적 자본을 얻고 확립하는 문학의 시녀적 성격이 다분하다. 이런 ‘영웅서사시’적 작업을 통하여 김일성은 ‘절세의 애국자’, ‘만고의 빨찌산’, ‘김일성장군’ 및 천출위인,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의 형상이 수립되고 현실적으로 '위대한 수령'으로 군림하고 인민들은 '수령복'을 만끽하는 정치적 역학관계를 형성한다.
[학술논문] 남한과 북한에서 제작된 윤용규 감독 영화에 대한 비교 연구 - <마음의 고향>(1949), <소년빨찌산>(1951)을 중심으로 -
...확인해볼 수 있다. 우선 <마음의 고향>의 경우, 원작인 <동승>과는 달리 민족주의적 색채를 지우고 있다. 계절 또한 겨울이 아닌 여름으로 바뀌었으며 서울에 대한 표상 또한 달라졌다. 이에 따라 영화는 원작과 달리 인간의 정서와 심리 등 보편적인 가치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대적, 정치적 색채를 탈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소년 빨찌산>은 정치적 의도에 따라 ‘대중적 영웅’과 악인 캐릭터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소품, 공간 등을 통해 그러한 요소들을 강화한다. 단,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 시기까지 각 이데올로기가 대립을 벌이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윤용규가 <마음의 고향>을 통해 정치적인 색채를 지우고 있다는 것 역시...
[학술논문] 1950~1960년대 북한의 ‘혁명전통’ 확립과정과 역사인식의 변화
이 연구의 목적은 북한에서 항일무장투쟁이 ‘혁명전통’으로 신격화되기 시작한 시기인 1950~60년대에 주목하여, 북한의 ‘혁명전통’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발굴’되고 정착되었는지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북한사회에서 절대적인 규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혁명전통’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유일한 ‘혁명전통’으로 복원하기 위해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지역을 답사하면서 관련 유적·유물을 조사·수집할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특히 1959년 5월 중국 연변을 답사했던 조사단은 5개월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