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월북 여성작가 지하련과 이선희의 해방직후 - 소설 「창」, 「도정」을 중심으로
...석재와 사백이라는 남성 주인공을 내세워 남한의 공산당 재건과 북한의 토지개혁 실시를 정확히 다루고 있다. 이 글은 지하련과 이선희를 여성작가에서 다시 월북작가라는 일방으로 조정하거나, 혹은 여성작가이면서 월북작가라는 이중의 한계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해방직후 그들이 좌파로 전신(轉身)했던 활약의 과정과 그 침묵의 결과를, 식민지 언론장에서 주조되었던 여류문단의 영향과 이후 형성될 반공국가의 검열효과와 더불어 맥락화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지하련과 이선희 연구에서 비교적 소략화되었던 해방기 행적을 되도록 재구하면서, 좌우분기의 냉전전야에서 그들로 인해 잠시나마 가능했던 탈식민기 좌파 여성작가라는 존재를 가시화할 것이다. 또한 이글은 그들의 해방기 유일한 소설이자 마지막 작품이었을 「창」과 「도정」을 당대의...
[학술논문] 미군 심리전과 ‘잔류’의 냉전 서사: 모윤숙의 한국전쟁 수기와 영상을 중심으로
...관점을 상론하고자 했다. 적화삼삭 체험이 내셔널리즘의 기억으로 서사화되는 과정에 중첩되어 나타나는 냉전 심리전의 맥락은 한국전쟁이 어떻게 냉전자유주의로 확대될 수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모윤숙의 잔류 서사는 부역자나 비도강파 문제 외에도 더 면밀하게 살펴야 할 쟁점이 있다. 수복 직후 모윤숙의 잔류 체험은 미 육군통신대 <여류시인(POETESS), ADC 8517 A~B> 필름에서 확인된다. 1950년 10월 중순 맥아더 사령부에서 전투지역 심리전을 담당할 장교 및 군속을 파견해 조직한 사령부 직속 사진부대가 촬영한 것이다. 영상에서 자살의 기독교적 알레고리와 클로즈업한 인물의 표정 및 동작을 정밀하게 보여주는 여러 신은 기록영화에서 배경과 상황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과...
[학술논문] 북한군 점령기 모윤숙의 잔류 체험과 한국전쟁 재전유의 서사
...『민족의 증언』(1983) 등의 8가지 판본으로 확인된다. 30여 년간 모윤숙의 기억이 널리 수용된 측면은 현실 정치 권력, 지배담론에 부합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1968년 전쟁 수기에 이르러 잔류 개념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전쟁의 냉전사적 의미였다. 『고난의 90일』의 경우 한국전쟁 당시에는 개인의 이념적 정체성을 복권하는 맥락이 컸지만 『회상의 창가에서』에 이르면 박정희 정권의 지배담론에 편승해 그것을 정당화하는 냉전 텍스트로 탈바꿈한다. 모윤숙은 잔류 서사를 냉전의 기원으로 신화화하는 글쓰기, 다시 말해 국가, 민족, 지역 간의 역사적 간극과 정치적 위상은 외면한 채 냉전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승전의 기억만을 전유하는 글쓰기를 30여 년간 부단히 지속함으로써 민족문학사를 대표하는 여류 시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학술논문] 북으로 간 국문학자 신구현: 경성제대 출신 독학자에서 주체문예학자가 되기까지
...학문의 궤적을 통해 근대 한국 지식사의 단면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12년에 태어나 2000년대까지 식민과 해방, 분단과 냉전을 가로지른 신구현의 일생은 근대 한국 지식의 굴절과 변형의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글은 우선 경성제대 시절 예과 11회 동기생들과의 독서회 활동, 졸업후의 조선어학회 경력과 임화가 경영한 학예사에서의 『역대조선여류시가선』 출판, 조선공산당재건운동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출소하여 정양 중에 해방을 맞이한 신구현의 식민지 시기의 삶과 학술적 이력을 검토하였다. 해방 이후 신구현은 원산 노력자 정치학교교장으로 근무하다가 김일성종합대학 설립과 더불어 교수로 임용되었다. 임용 이후 그는 김일성종합대학교 교직원 세포위원회 위원장, 조선어문연구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북한의 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