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50년대 번역 장의 형성과 문학 번역 ― 국가권력, 자본, 문학의 구조적 상관성을 중심으로
한국번역(문학)사에서 1950년대는 번역의 장이 문화제도적으로 조형된 최초의 연대이다. 번역이 사회문화 전반의 핵심 의제로 제기된 가운데 공론의 장에서 나름의자율성을 지닌 국가권력, 출판자본, 문화주체 등이 문화적 후진성에 대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각기 분명한 의도와 실행력을 갖춘 인정투쟁을 전개하면서 번역의 제도화가이루어진 것이다. 국가권력은 근대화기획의 일환으로 외국도서수입과 도서번역사업을추진했다. 특히 ‘외국도서번역사업 5개년계획’(1953~57)을 통해 152권의 외서를 완역하고 94권을 출간함으로써 기초 학술자료에 목말라하던 교육계와 실수요자들에게근대적 지식을 공급하는데, 자본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설파하거나 미국대학에서 교재용으로 사용된 이론서가 주종을 이루었다. 외서의 官給的 번역
[학술논문] 평남분지의 하부와 중부 고생대층: 송림역암의 고지리적 의의
1934년 황해도 황주군 겸이포(현재 황해북도 송림시에 편입)에서 전기 주라기 대동누층군의 기저부에 역으로 포함된 사일루리아기의 산호화석이 보고되면서 이전에는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어온 중기 고생대층의 분포 가능성이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후속 연구에서 “겸이포석회질역암”(현재 송림역암으로 개칭)의역들만 사일루리아기 또는 후기 오르도비스기에서 석탄기를 지시하는 화석을 포함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송림역암은 대동강 유역의 대동누층군에 해당하는 송림산통의 기저부에 포함되며 층후는 최대 300 m 정도로 추정된다. 하부는 중기 고생대의 화석을 포함하는 석회각력 위주로 구성되고 상부는 캄브리아기 하부-오르도비스기의 화석을 포함하며 원마도가 양호한 점판암, 규암 및 석회암력으로 이루어져...
[학술논문] 김정은 체제 하에서 북한군의 정치적 역할과 위상
이 논문의 목적은 북한 김정일-김정은 권력승계과정과 그 이후 전개되고 있는 조선인민군의 정치적 변화를 고찰해 봄으로써 북한군의 정치적 역할과 위상을 추론해 보는 것에 있다.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선군정치 하에서 군이 당의 우위에 있거나, 당과 내각 사이에서 대립하면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 하는 것처럼 비추어 질수 있으나 북한군의 역할은 수령유일지도체제를 지탱해 주는 정치적 자산에 국한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김정일 시대의 권력핵심부는 노동당의 형해화를 통해 군을 전형적인 직할 군통제 방식으로 우위를 설정해 왔다. 그러므로 북한의 군통제에 관한 정치행태는 일반 사회주의 국가의 당-군관계의 관점에서 벗어나, 수령이라는 절대 권력자와 군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 김정은 시대에는 당의 제도화를 통해 정권의 공고화를 추구하려
[학술논문] 번역가 김억과 임학수의 머리말-한시와 영문학 번역 계보의 성립 배경-
...번역시집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김억과 임학수를 통해 번역가의 목소리를 역사적으로 조명할 수 있으며, 식민지 시기에 한시 및 영문학 번역의 계보가 성립된 배경과 성격을 재평가할 수 있다. 김억은 시집의 머리말을 통해 구체적인 번역 방법론을 개진하면서 번역 실천을 수행했다. 번역시의 독자적인 가치를 중시한 김억은 시종일관 시 번역의 창조성과 개성적인 의역을 강조했으며 독자의 취향과 감식안에 중점을 두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여성 한시 번역에 몰두한 김억은 서양시 번역에서 내세운 원칙을 일관성 있게 지켰다. 김억의 번역론은 한시와 한문학의 유산을 타자화함으로써 외국문학으로 포착해 내고 정전의 재평가와 새로운 시형을 실험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식민지 시기의 마지막 영시 앤솔러지를 펴낸 임학수는 19세기 영문학에...
[학술논문] 식민지 관제 역사학과근대 학문으로서의 한국역사학의 태동 - 진단학회를 중심으로
1920~30년대 일본 관제역사학은 조선사편수회·경성제대 사학과·청구학회라는 세 축으로 정비되었다. 이에 맞서 한국 역사학계는 민족주의적 흐름의 조선학운동, 마르크스주의사회경제학, 진단학회라는 세 가지 경향으로 구성되었다. 1934년 결성된 진단학회는 발기인·위원, 찬조회원, 신입통상회원으로 구성되었다. 출신별로는 일본대학과 경성제대 사학과 졸업생들이 중심이었으며, 학문적으로는 역사학·국어국문학·민속학을 중심으로 다른 학문분야가 결합했다. 찬조회원들은 당시 한국사회·문화의 대표적 저명인사들이었고, 통상회원은 학문후속세대였다. 진단학회의 학문적 지향은 일본의 관학아카데미즘, 조선학운동, 마르크스주의역사학과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