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구 조선총독부 경찰관료와 사상범의 ‘식민지 조선’ 회고와 남·북한 인식
This paper focused on the difference of historical recognition between the pre-colonial police official(Tsuboi Sachio) and pre-political offender (Isogaya Sueji), especially recollect of one’s life in colonial korea’s era and South and North korea recognition after the second world war. Tsuboi emigrated to colonial korea for the purpose of university entrance, after graduation he passed
[학술논문] 재조일본인 노동자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의 체험을 통해 본 8.15와 귀환의 기억
재조일본인 이소가야 스에지는 1930~40년대에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노동운동사건에 연루되어 약 9년간 식민지 조선의 감옥생활을 하고 8.15와 함께 귀국한 후에는 도쿄에 거주하면서 ‘북한 민주화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문필활동을 전개했던 인물이다.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이소가야 스에지의 삶에서 식민지 조선과 전후의 한반도라는 공간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90세를 넘게 살았던 그가 재조일본인으로 살았던 기간은 약 20년 정도이다. 처음 조선주둔 일본군으로서 한반도에 발을 디뎠던 그는 분명 식민자이자 가해자로서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군 제대 후 조선에 남아 일본인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노력한 세월은 피식민지인을 위한...
[학술논문] 일본패전 후 재만주 일본피난민의 실상과 북한유입 및 남하탈출
...그 결과 재만주 일본피난민은 3군의 주택 강제 접수, 소지금과 물건 약탈, 부녀자 폭행 및 강제노동 사역 등으로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평양과 함흥에 유입된 만주피난민들도 의식주생활의 악화로, 개인 및 소규모적인 탈출을 시도했으나 대부분 역송되었고 차츰 소련군 간부들의 묵인으로 집단탈출도 개시되었다. 특히 함흥에서의 이소가야 스에지의 귀환활동이 돋보였고 한층 1946년 12월 공식적인 귀환협정이 맺어졌을 때는 재주일본인의 97%가 이미 탈출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고는 일본패전 후 동북아에서 일본인이 3군 및 조선인과의 갈등과 인구이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평양과 함흥 이외의 도시에 유입된 만주피난민의 귀환특징에 관련된 후속 연구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