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75년 인도차이나 공산화 시 김일성의 북경 방문: 배경, 의도, 귀결
이 논문은 1975년 김일성의 북경 방문이 한반도의 무력통일 도모보다는 인도차이나 공산화의 파장에 대한 위협인식에서 중국의 대북 안보 공약을 확인하기 위한 행보였으나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을 강화하는 반명제로 귀결되었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인도차이나 공산화로 인해 ‘남조선혁명’ 재연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오히려 위협인식을 가졌던 것은 베트남 전 종결 시 미군의 한반도 재배치 내지 주한 미군 철수 계획의 차질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이공 함락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은 남한의 안보위협 고조뿐만 아니라 북한에게도 심각한 안보위협을 가하는 남북 간 상호 위협인식(mutual threat perception)의 계기였다. 김일성의 북경 방문 시 호전적 발언 등 위기조성전략을...
[학술논문] 1975년 세계여성대회와 분단 체험-이효재, 목격과 침묵 그리고 증언 사이에서
이 글은 1975년 6월 19일에서 7월 2일까지 두 주에 걸쳐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유엔의 세계여성의 해를 기념한 세계여성대회를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한 이효재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맥락화하고자 했다. 박정희 정권은 한편으로는 1975년 4, 5월 인도차이나 공산화에 따른 안보 위기 속에서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하여 여성을 대중을 안보총화의 대열로 동원하는 데 세계여성의 해에 대한 여성계의 기대를 활용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10월 한국문제를 의결하는 30차 유엔총회를 앞두고 북한과의 외교전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도 참석한 세계여성대회에 대표단을 파견한다. 그러나 그 현장은 이효재에게 있어 분단 체험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대표단으로서 해야 할 일은 침묵하는 것,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