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그러나 이들이 꿈꿨던 이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실의 공산주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워버리고, 일당 독재와 억압으로 변질되어 갔다.
한국에서 공산주의는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민족 저항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는 무기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근대적 사상이 아니라 외세에 대한 적개심과 원한에서 비롯된 퇴행적 성격이 강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과 만주, 중국에는 무려 아홉 개의 공산주의 단체가 생겨났고, 지식인들은 공산주의를 이상향으로 바라보았다. 상해파, 이르쿠츠파, 고려공산당, 화요회, 북성회 같은 조직들이 속속 결성되며 사회 전반으로 번져갔다.
그러던 중, 전 세계의 판도를 바꾼 회담이 열렸다. 1945년 2월...
[정치/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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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링이 그린 지원군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전형적인 영웅보다 복잡하고 현실적인 존재였다. 루링은 자신의 기존 창작 특징인 혼란의 시대 속 중국 지식인과 하층민의 갈등, 분투, 상처를 다룬 서사에서 벗어나, 신중국의 광명과 새 희망을 담고자 노력했고, 이를 위해 혁명의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조선으로 자원해 직접 현장을 체험하며 창작에 몰두했다. 그러나 정치적 요구와 창작의 본질적 추구 사이에서 그는 여전히 ‘인간 내면의 탐구자’로서의...
[통일/남북관계]
진보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폭로하다!
1946년 창간된 이래 현재도 출간되고 있는 월간지 〈세카이〉는 일본 최고의 정론지이자 진보적 지식인들의 공론장이다.
전전戰前 일본의 군국주의적 가치를 철저히 부인하고 자유, 민주, 양심, 인권을 중심 가치로 내세운 〈세카이〉는 전후戰後 일본의 정신사를 주도한 화려한 필진, 여론을 선도한 영향력, 그리고 이와나미 출판사라는 상징자본이 결합되어 한 시대의 지적(知的) 나침반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세카이〉가 한국 독자의 이목을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반도 문제에 대해 늘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점이다. 특히, 냉전 분위기가 지속되던 1970~1980년대에는 지속적으로 북한 김일성을 인터뷰하고...
[정치/군사]
...있었던 원동력을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찾으며, 앞으로도 그 질서를 지키고 확장해야만 진정한 강대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근대적 사고, 기득권 카르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하며, 일본과의 협력과 북핵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 등 냉철한 국제 감각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대적 가치와 감각을 지닌 새로운 세대가 이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강대국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도달해야 할 현실이다. 이 책은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의 방향을 고민하는 정책 입안자에게는 전략적 시야를, 진영 논리에 갇힌 사회를 넘어서고자 하는 지식인에게는 날카로운 비판의 틀을,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다음 세대를 위한 국가 전략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통일/남북관계]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의 비판적 지식인과 학자들이 오늘날의 세계 전쟁 국면을 진단하고 문제의식을 나누며 평화적 해결의 경로를 탐색한다. 한반도는 70년 동안 지속된 정전과 대치 상황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절실하지만, 오늘날 또다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만해협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위기나 우크라이나 및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등 세계 곳곳의 전쟁으로 평화를 향한 세계 민중의 열망이 더욱 강렬해진 현실이 기획의 배경이 되었다.
국제관계, 역사, 정치, 과학기술, 문화 등 각 분야의 연구자들은 각자의 글에서 동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현실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보편성을 확인하며, 객관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동시에 공통의 해결 경로를 찾아나가고 있다...
[학술논문] 한일협정 후 한국 지식인의 일본 인식
Korean people’s perception of Japan can be summarized into antipathy against imperial exploitation, favorable impression of Japanese economy and culture, and ignorance of Japanese politics and military. This is less a natural consequence than the result of influence by discourses on Japan in the Cold War Era. With the conclusion of Korea-Japan Treaty in 1965 without apology or compensation from
[학술논문] 냉전기 일본 진보파 지식인의 한국 인식 - 『세카이』의 북송·한일회담 보도를 중심으로 -
본고는 냉전기 일본 ‘진보파’ 지식인의 한국(남북한) 인식을 고찰하기 위해 시사 월간지 『세카이』에 나타난 한국 인식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먼저 제3세계론의 대두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냉전이 고착화되기 시작한 1950년대 중반까지 일본 냉전체제의 구축과 그 아시아 인식상의 문제점을 전사(前史)로서 분석하였다. 이를 전제로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전반까지의 시기에 표출된 아시아 인식의 일환으로서 한국 인식을 검토한다. 특히 재일조선인 ‘북송’과 한일회담에 관한 보도에 초점을 맞추어 그 구체상을 검토하였다. 이 시기 일본의 진보파 지식인들은 남북한 이원론에 입각해 북송을 지지하고 한일회담에 반대하였다. 세카이는 북한 방문기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학술논문] 동북아 안보질서와 한일 협력 : 거시적 안목으로 대응하자
...있도록 이끌어 가는 지혜로운 지식인 집단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국가인 경우, 그 국가는 대외정책 선택에서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면 당연히 택하여야 할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국가 존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적절한 정책을 추구하게 된다. 현재의 한일 관계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북아 안보질서는 점차 불안정한 무질서로 발전되어가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상대적 쇠락, 그리고 미국의 소극적 개입 등으로 안정적인 동북아 안보질서를 지탱해오던 세력 균형이 흔들리고 있고 기존의 국제질서에서 존중되던 모든 원칙과 규범을 무시하는 북한의 저돌적인 도전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군사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환경변화 속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국론을 하나로 통일할 수...
[학술논문] 해방기 소련에 대한 허구, 사실 그리고 역사화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북조선 지식인의 소련 방문이나 1947년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이후 소련문화에 대한 선전사업의 확대와 강화로 인해 소련은 ‘해방자’이며 ‘방조자’의 이미지로 정착되었다. 여기서 해방기 북조선의 과도한 소련에 대한 편향은 당대 북조선 지도부나 일반 지식인에겐 보편적인 현상이었는데, 북조선 지도부는 반파시즘적 연대 측면에서 조선과 소련의 친선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이 북조선의 자주독립뿐만 아니라 민주건설을 보장하는 기본조건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조선대표단의 제1차 소련 방문의 표면적 목적은 소련을 배우는 것이었으나 잠재된 진정한 목적은 일본에서 갓 해방된 조선의 독립국가건설의 방향성을 찾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당대 지식인의 소련 방문이란 합리성과...
[학술논문] 해방과 분단의 공간에 나타난 예술가들의 이념적 행보 - 안막의 문학과 삶을 중심으로 -
본고는 해방과 분단의 공간에서 시인이요 프로문예 비평가이며 문화예술가로 활동한 안막의 문학과 삶을 탐구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그는 1910년 한일합방이 조약된 해에 태어난 식민지 지식인들과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대립하며 한국문학의 이론적 정초를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특히 1930년대 좌파와 우파의 양대 진영 속에서 프로문학을 주도하며 예술의 창작과 내용방법에 대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했다. 그러나 카프의 1․2차 검거 사건으로 프로문학의 정치투쟁이 불가피하게 되자, 예술 창작 방법의 내용과 형식의 논쟁에 가담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선택했다. 이러한 문화예술운동의 방향전환은 무용가 최승희와의 결혼에서 비롯된다. 그는 사회혁명의 도정에서 ‘프로문예 비평가’에서 ‘문화 예술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