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79년 카터 대통령의 남북미 3자회담 추진과 박정희 정부의 인식
1979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제안 된 남북미 3자회담은 한국의 남북한 당사자 원칙을 국제협력 원칙으로 변화한 사례였다. 본 연구는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이 가졌던 세계적/지역적/국지적 수준별 인식 차이와 양국의 이해관계 변화를 새롭게 비밀해제 된 1차 자료에 근거하여 분석했다. 카터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은 군사적인 긴장완화를 의도한 주한미군 철수계획과 미중관계의 우호적인 기대 속에서 수립되었다. 반면 박정희 대통령은 주변국의 외교관계나 안보환경 변화를 주시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남북한 체제경쟁과 현상유지를 우선했다. 이러한 차이는 남북미3자회담에 대한 한미갈등으로 표출되었다. 이에 대해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제안을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관여를 통해 회담 성격의 관철, 철군계획의 유보, 한미관계의 유지라는...
[학술논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철수에 대한 미의회의 입장 변화에 관한 연구
...군사력이 정확하게 평가되었는가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었다. 싱글로브 장군의 증언이후, 의회 내에서, 주한미군 철수 반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1977년 6월 16일, 상원 본회의는 미의회와 협의하여 행정부가 주한미군 철수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버드(Byrd)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결의안 제출 이후에, 철수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미의회가 이 결의안을 통해 주한미지상군 철수 계획에 대해 처음으로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된 미하원 군사위원회에서의 싱글로브 장군의 증언과 미상원의 결의안을 통해 미의회의 입장이 변화된 것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차후의 철수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미행정부는 미의회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게 되었다.
[학술논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정책과 한국의 대응: 철수계획 수정 후 한미연합사 창설까지
주한미군은 현재 한국의 안보에 중요한 요소이며, 앞으로도 그 역할은 지속될 것이다. 과거의 주한미군 철수정책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주한미군 정책과 관련된 하나의 기준점을 확인할 수 있고 대비과정에서의 함의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1978년 4월에 카터 행정부가 주한미군 철수수정을 발표한 이후,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 창설까지의 기간 동안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미 행정부의 입장과 미 의회의 보완조치법 처리, 북한군사력에 대한 미국의 평가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 시기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과정을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주한미군 철수에 따라 보완조치를 이루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결정 당시의 북한 군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