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한국 현대 서사문학에 나타나는 인천 - 이원규의 「황해」를 중심으로 -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인천의 정체성 탐색’을 위한 텍스트로 선정될 수 있었다. 이 소설에 나타난 인물을 인천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주인공 서준혁은 그 인간상이 사회주의 이념의 화신으로 나타났다. 덕적도 아랫개 마을 사공촌에서 태어난 이 빈민 출신은 중학시절부터 선주와 사공의 이익분배가 잘못된 것을 지적했고, 학교 졸업 후에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인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건설하려는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든다. 그 후 이승엽, 조봉암, 김원봉 등과 만나면서 철저한 사회주의자가 되어 인천지역 노동자를 선동하여 파업을 주도하고, 자본가의 노동자 착취를 선동한다. 사공들을 규합하여 사공들 짓잽이를 늘이는 운동을 벌려 좌익 세력을 키우면서 사회를 전복시킬 기회를...
[학술논문] 전사(戰士)형 여성상으로 본 1950년대 북한연극의 젠더체계 - <탄광사람들>(1951)을 중심으로
...남성이 다를 바가 없다고 재차 강조하고 남편은 그녀를 전우로서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성별은 고문을 당할 때, 그리고 숭고한 죽음을 맞을 때 차별화된 극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여성 인물의 수난사와 타락상을 체현하는 여성 인물/여배우의 몸은 무대 위에서 적군과 결부될 때 적개심을 고취하는 대신 에로틱한 인상만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시됐다. 연극을 본 김일성이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함에 따라 연극은 ‘자연주의적’ 요소가 짙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여주인공이 고문당하는 장면은 수정하는 작업을 거쳤다. 여기서 <탄광사람들>과 관련한 논란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여성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획득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전략과 더불어 당대 사회에 깔려있는 이중적 성의식을 드러내기도...
[학술논문] 식별의 인상학 -북한소설의 출발과 행로-
이 글의 논점은 해방 직후에 쓰인 북한소설이 인물 형상의 제시를 통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식별하는 인상학(人相學, physiognomy)의 틀을 세워 나갔다는 것이다. 식별이 요구된 해방 직후의 정황을 살피고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통해 인상학적 틀이 제시된 방식 내지 양상을 검토하여 문학적 인상학의 행로를 밝히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해방 직후에서 식별은 사람들이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며 어떤 편에 서야 하는가를 정당화(rationalize)하는 행위로 요구되었다. 식별은 정치 이데올로기의 작동과 더불어 집단적 과제가 되며, 그에 따라 위치 잡기(positioning)는 정치적 선택-귀속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북한문학(작가들)이 권고문학(advisory literature)의 형태를 습용한
[학술논문] 북한 영화 국제교류 현황 조사연구
...이정표를 마련하고자 한다. 현재 북한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미비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북한영화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꾸준하다. 또한 남북화해 무드가 열리며 통일을 대비한 북한 영화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꾸준하게 증가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영화 연구는 1)기본적인 자료에 대한 접근 한계 2)북한 영화 리터러시를 위한 창의적 연구방법론의 부재 3)소수의 관련 선행연구들 4)빈약한 북한영화 연구지원 토대 등으로 인해 폭 넓고 심도 깊게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까지 북한영화에 대한 연구 결과물들은 몇몇 사료적 충실함이 있는 연구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개별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과 감상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인상, 관련 개인 인터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정확한 북한영화의...
[학술논문] 북한의 유화 인식 변화와 한상익(1917-1997)의 형식 문제
...한상익은 해방 이전시기 동경미술학교에서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인상주의 및 장식적인 색채 점의 효과를 사용한 흔적이 보이며 그는 이후 북한에서 활동하면서 그러한 표현을 발전시켜 나갔다. 1950년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는 특히 변월룡(1916-1990)을 통해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소비에트 인상주의를 학습했다. 1950년대 후반기 북한 미술계에서는 도식주의를 배격하고 예술적 기법의 다양성을 모색하며 풍경화 장르와 작가의 개성, 시적 정신의 발현이 강조되었다. 한상익은 이 시기 자신의 풍경화 작품을 통해 ‘객관적 미와 주관적인 것의 긴밀한 연계’를 표현한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는 복잡한 필치 문제로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의 필치는 이후 1960년대에 사상성 강조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