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지리산권 빨치산의 형성과 활동
한국 사회와 현대사에 강력한 규정력을 행사해 온 한국전쟁의 기저에는 기록되지 못한 수만의 빨치산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해방 후 미군정 3년 동안 일어났던 크고 작은 소요를 둘러싼 갈등과 억압이 치안문제 차원에서 전개되었다면, 1948년 하반기부터는 정부 수립과 여순사건을 계기로 국가에 대한 ‘반란’과 ‘토벌’이 첨예하게 펼쳐졌다. 1948년 10월 이전에도 산악 지역에서 남로당의 ‘야산대’가 존재했지만 빨치산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공간적 배경은 지리산 일대였다. 지리산이 빨치산들의 유일한 활동 지역은 아니었으나 매우 유력한 활동의 근거지였다. 최종적으로 지리산은 모든 빨치산 활동이 종료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 조직과 활동은 크게
[학술논문] 빨치산과 친일파 ― 어떤 역사 형상의 종언과 미래에 대하여
...위안부 문제,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친일파의 형상은 계급적으로 하층으로 내려가고 있으며 갈수록 풍요로워지고 있다. 무엇보다 식민지 근대성 담론은 도덕적이고 정치적이었던 이슈인 “친일”을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관계 형성에 따른 “협력”으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한다. 경제주체로서의 근대적 주체의 형성에 내포된 필연적 경향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를 근대성과 저항 민족주의의 경합 장으로 묘파하고 있는 작금의 대중문화는 친일파 이슈의 역사적 긴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다른 한편, 남북한 국가 성립과 함께 이루어졌던 폭력의 독점화 과정에서 대량학살된 파르티잔은 그 자체로 폭력에 연루됨으로써 근대국가에 의한 폭력의 정당화와 자연화를 심문하는 역사 형상이었다.
[학술논문] 유고슬라비아문헌에비친일제의한반도지배에관한연구 : 지배 상황 묘사와 잔재 청산작업 평가를 중심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수립한 티토와 파르티잔은 동유럽 국가들 중 유일하게 독자 공산화를 수립했다는 자부심을 기초로 소련의 영향력에 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구축하고자 했으며, 이것은 1948년 ‘코민포름 분쟁’으로 전개되었 다. 분쟁 전후로 유고슬라비아는 정치,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소련을 비롯한 주변 바르샤바 조약국들로부터 심각한 군사 위협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유고슬라비아 는 강대국 영향력에 고통 받고 있거나, 자신과 비슷한 외세 지배 하 역사적 경험을 지닌 한반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의 한반도 상황 분석 노력은 일제 지배로 인한 한(韓) 민족 고통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로 이어졌고, 더불어 소련 잔재 청산 노력을 기울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