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월북 극작가의 제주 4·3항쟁 형상화에 나타난 ‘해방’의 의미 재고찰 ― 함세덕 희곡 <산사람들>(1950)을 중심으로 ―
이 논문은 희곡 <산사람들>에 나타난 제주 4․3항쟁의 형상화 양상을 살핌으로써 극작가 함세덕이 그리고자 한 ‘해방’의 의미를 재고찰한다. 해방 이후 남과 북이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과정에서 문인들 역시 좌우 진영으로 나뉘었으며, 함세덕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월북하여 북한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산사람들>은 1949~1950년 북한 문예지에 연재되고 해주와 평양에서 공연된 작품으로, 제주 4․3을 반미․통일투쟁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이 글은 <산사람들>이 단순한 북한 체제 선전극이라기보다 4․3항쟁을 통해 재현한 각성된 민중들을 해방기 국가건설의 주체로 내세움으로써 진정한 탈식민 해방의 전망을 모색한 작품임을 밝히고자 했다. 우선 텍스트 독해에 앞서 함세덕이 남로당 계열의...
[학술논문] 북한 공간문헌 속의 제주
...사실은 명확하나, 4.3 의 피해가 깊이 새겨져 있는 핍박받은 땅이자 ‘항쟁의 섬’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한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과거 이승만정부의 ‘탄압과 폭정’ 그리고 차별받는 지역으로서의 상징으로 제주도를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과거 해방 직후의 사건보도 등이 로동신문에 게재된 이후 60~80년대까지는제주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로동신문의 지면이대체로 6면에 불과해서 양적으로 매우 적다는 데도 그 원인이 있다. 주로 대남면으로사용되는 5면에(최근에는 6면에 게재) 게재되는데 이마저 북한 내부의 큰 행사가 있을 경우 대남 기사는 전혀 게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90년대 접어들면서 기사가 다시 증가세를 보이는 것은 4.3항쟁 50주기와 70주기가...
[학술논문] 해방 공간에서의 사회 상황과 기독교
...고 북쪽에는 ‘친소좌파’만 득세하게 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사그라들게 되었다. 이렇게 사회적 혼란이 심화되고 있는 중 남과 북에 서로 이념을 달리하는 정권 이 들어서면서, 남과 북뿐만 아니라 남한 내에서도 오로지 이념 문제로 민족과 기독교가 분열을 거듭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 결정적 사건이 1948년 대한 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후에 일어난 제주4ㆍ3민중항쟁과 여순사건이었는데, 이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친일 경찰과 군인 등을 ‘애국자’로 둔갑시켜 대거 투 입하고 기독 청년을 비롯한 ‘반공청년단’이 이에 협력하였으니, 그 피해자가 된 일반 백성들에게는 ‘친일=친미=반공’ 인식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6ㆍ25전쟁을 일으켜 우리 민족의 이념 분쟁을 고착시켰으 므로, 그 근본 책임은 일제와...
[학술논문] 잊혀진 항쟁: 1946년 10월 항쟁과 냉전기 민중운동사의 궤적
...「보도자」(1950), 이동규의 「함성」(1947∼1948)에 주목하여, 10월 항쟁의 민중운동사적 의미와 재현의 언어들이 반미(反美)-반공(反共)의 역학 속에 함몰되어간 궤적을 탐색했다. 민중항쟁에 이념적 색채가 덧씌워지는 과정에서 남한에서는 항쟁을 의미화하거나 재현하는 활로가 막혔고, 미군정과 군경 폭력의 문제성은 은폐되었다. 북한에서는 남로당 숙청과 함께 ‘10월 항쟁’이라는 기표가 삭제되었다. 결과적으로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10월 항쟁’은 잊혀진 항쟁이 되었다. 그러나 10월 항쟁은 불과 2년 뒤의 여순항쟁과 제주4・3을 가능케 한 민중의 경험이자 역사적 자산이었고, 불행하게도 공권력에 의해 ‘반공’의 이름으로 민중을 잔인하게 학살할 수 있다는 반역사적 교훈을 남긴 사건이었다. ‘폭동’과 ‘항쟁’을 경유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