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광복 후 분단체제에 대한 원불교의 대응과정 연구
해방 후 한국사회는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다. 일제시대에 태동된 원불교는 한국민족의 이러한 분단의 고통을 분담하면서 성장하여 왔다. 이에 본 논문은 분단체제에 대한 현재까지의 원불교의 대응과정을 연구한 것이다. 먼저 분단의 현실에 대해서는 주로 백낙청과 이종석의 분단체제론과 분단구조론을 분석하였다. 이들은 분단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으로 시민참여가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종교계 또한 이러한 현실 위에 대북한 교류의 장을 넓히고 있으며, 원불교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분단체제에 대한 원불교의 대응양상에 대해서는 먼저 광복 후의 과제와 당시 최고 지도자였던 정산 송규의 「건국론」의 의미를 짚어보았다. 그 내용 가운데 민주국건설과 중도주의 운용은 현 시점에서도 한반도의 통일방식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학술논문] 1950~70년대 ‘사상계’ 지식인의 분단인식과 민족주의론의 궤적
...발표된 7ㆍ4남북공동성명은 사상계 지식인 내부를 저항 민족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통일 민족주의로 나아가는 무리와 냉전의 지속을 주장하며 반공 자유주의를 고수하는 무리로 나누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장준하와 문익환은 남북공동성명을 민족의 진로를 제시한 이정표로 받아들이고, 탈냉전의 지평에서 분단체제의 극복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민족의 실체로 남북한의 민중을 불러내면서 민주 복지국가로서 통일 조국의 미래를 그렸다. 그에 반해 양호민과 신상초는 냉전적 사고를 고수하며 남북공동성명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들은 남북 두 정치단위의 현상유지와 평화공존을 기조로 한 박정희 대통령의 6ㆍ23선언에 동조하며, 반공 평화통일론의 논리를 되풀이하였다. 이처럼 사상계 지식인의 분단인식의 분화는 결국 7ㆍ4남북공동성명 노선과...
[학술논문] 남북대화 규범의 탄생- 구성주의 시각에서 본 1970년대 남북대화
본 논문은 1970년대 남북대화를 구성주의의 시각에서 접근하고자 했다. 구성주의는 현실주의가 포착하지 못하는 연구대상을 발견하게 해주며, 연구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설정하게 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또 다른 이해를가능하게 한다. 1970년대 남북대화는 ‘데탕트’의 흐름 속에서 한민족국가를 꾀하는 ‘민족주의’와 이산가족방문을 뒷받침하는 ‘인도주의’의 가치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가치들은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나, 냉전적 국제정치구조가 느슨해지기 전까지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가로지르는 남북교류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우호적인 남북관계는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는 1970년대 남·북한의 관계개선이 국가 이익과정체성
[학술논문] 남북대화의 국내적 활용과 ‘7 4남북공동성명’의 도출
...남북대화의 시작과 ‘7・4남북공동성명’의 도출을가져왔다. 박정희의 ‘8・15선언’으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대외정책 변화와 남북대화의 진행 및 ‘7・4남북공동성명’의 도출은 역시 데탕트 분위기에 따른 미국의 대한정책 변화에 대한 박정희의 대응적 성격이 강한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초 동북아에서의 데탕트는 이전의 냉전 시기동안 미국에 편승하는 것 외에는어떤 대안도 갖지 못했던 한국 안보와 외교의 변화를 강제하는 대외환경의 발생이었다. 이에 대한 대응의하나로 나왔던 ‘7・4남북공동성명’의 도출에는 박정희의 국내정치적 대응과 활용의 목적이 더 컸던 것으로보인다. 그런 점에서 ‘7・4남북공동성명’은 박정희에게 있어서는...
[학위논문] 북한의 종교정책 변화에 관한 연구 : 인간중심철학의 대두을 중심으로
...따를 때에만 의미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결국 황장엽의 인민대중중심주의는 사상 이념적 방향제시에 그치고, 정책적 차원의 직접적인 변화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변화의 배경을 이루는 인본주의에 대한 해석학적 원리로 작용하여 주체사상에 입각한 북한종교정책 변화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분명하다.
북한은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해외에서부터 종교인들과의 접촉을 시도하여 실제로 80년대 이후에는 상당한 진전을 이루게 되었고, 특히 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이에 적용되었던 이념적 제약도 상당히 완화되어 그 폭을 넓혀 나갔다. 주체사상을 매개로 한 인본주의적 요소의 도입이 종교에 대한 이해와 관련하여 직접적인 언급으로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1981년의 제1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