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심각한 경제위기로 국가의 물적 토대가 사실상 와해된 위기 상황에서 북한가족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있다. 여타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같이 북한 당국은 임금과 서비스의 분배자로서 인민과 가족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동시에 배급, 의료, 교육 등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했지만, 1994년을 계기로 심화된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더 이상 인민과 가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는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님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국가라는 공적영역이 담당했던 사회주의 제도적 공백을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이 어떻게 채우고 잇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논문은 추상적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는 북한 가족의 사회적 재생산 메커니즘을 구체적 수준에서 분석하여, 구조적 위기에 대응한 북한 가족의 전략적 행위와 그 과정에서 초래되는 가족의 변화를 규명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구조적 수준에서 사회체제 변화에 따른 가족제도의 변화라는 측면과 더불어 행위적 수준에서 가족이 행위자로서 경제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여 가족전략을 행사함으로써 가족의 사회적 재생산을 보장하는 측면을 동시에 분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서 본 논문은 구조와 행위의 관점에서 가족전략개념을 이론적 근거로 하여, 구조와 행위의 결합, 사회와 가족의 통합, 추상과 구체의 연합을 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1980년 이후 1998년 12월 현재까지 한국에 입국해 잇는 탈북자 165명에 대한 질문지 조사라는 양적 조사방법과 탈북자에 대한 심층사례연구, 참여조사, 인터뷰 등의 질적 조사방법을 병행하여 연구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탈북자 조사를 통해 북한가족에 관한 실증연구를 추구하는 한편 북한의 문헌과 2차 자료분석을 통해 실증조사의 한계점을 보완한다. 지금가지 연구내용 및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의 경제적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가족정책이 변화하고 이에 바탕하여 가족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가족의 혁명화 정책을 통해 사회 및 가족 내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한편, 가족의 경제적 기능 강화 정책을 통해 국가가 담당해야 할 부양 의무를 가족에게 전가하는 정책을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추진하고 잇다. 이러한 정책의 영향으로 북한가족은 절대빈곤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으로 가족원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족주의를 스스로 강화하면서 여성들의 과중한 이중 역활 하에 가족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가족은 스스로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가족단위의 전략적 대응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가족은, 공장가동률과 식량배급률이 모두 30% 미만에 그치고 국가분배시스템의 붕괴로 국가가 기본생활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위기상황에서, 1994년을 기점으로 세가지 전략적 대응을 행사하여 가족의 사회적 재생산을 스스로 보장하고 잇다. 가족전략은 수입의 극대화와 지출의 극소화를 통한 생계유지전략, 가족이동과 가족해체를 통한 가족구조 변화전략, 사적 연결망과 공적 연결망의 활성화를 통한 사회연결망 활용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족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회주의적 경제활동만으로는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비사회주의적 경제활동을 통해 수입을 극대화하며, 식비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의 지출을 최소화함으로써 가족의 단순재생산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는 일, 식량을 구하는 일, 생활비를 관리하는 일 등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잇다. 다음으로, 가족내의 자원만으로는 위기대처의 효과적 방안을 찾을 수 없을 때 가족은 식량을 찾아 농촌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최종적인 선택으로서 가족 자체를 해체하기까지 한다. 끝으로 생계유지전략이나 가족구조변화전략과 동시에 선택할 수 잇는 전략으로 사회연결망 활용전략이 있다. 이 경우 친족과 친구관계 등 사적 연결망의 활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 사회단체나 국가×당의 연결망은 거의 활용되지 않고있다. 직장 연결망 역시 경제난 이후 활용도가 현저히 낮아졌다. 공적 연결망의 활용도가 이렇게 저하되는 현상은 국가경제시스템의 마비를 반영하는 것이다. 대신 뇌물이나 흥정 같은 공적 연결망의 비공식적 관계가 활성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잇다.
셋째,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가위기?怜≠렉箚折?제?怜≠렝晥? 수행 과정을 통해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북한가족은 매우 어려운 방식으로나마 자체의 재생산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가족의 성격 자체도 이러한 상황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잇다. 가족단위의 생존과 부양의무를 강조하게 됨으로써 가족주의를 강화하고, 여성의 책임과 역할이 증대하는 성역활 분담성이 강화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도한 개별 가족의 경제적 조건에 따라 재생산활동이 달라짐으로써 계층간 차이가 전례 없이 심화되는 것도 변화의 한 측면이다.
그러나 경제난이 심화된 1994년 이후 여성들의 가족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높아지기 시작한지 3년 내지 5년 정도의 기간이 경과된 이후에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나타나고 잇다. 여성의 역할증대로 전통적 가장권이 약화되면서 부부관계의 평등화를 예측하게 하는 단초가 포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가사노동분담 비율이 증가하면서 종래의 성역활 고정성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이중적이어서, 비사회주의적 경제활동에 의해 가족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북한가족의 전략적 대응이 단기적으로는 북한사회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잇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사회의 변화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특히 비공식 부문을 통해 작동하는 시장적 기제가 중장기적으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작동기제 자체를 무력화할 수도 잇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경제위기로 인한 가족정책의 변화 및 이에 대응하여 발생한 가족전략 및 가족구조의 변화가 앞으로 북한가족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다시 심화된 위기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북한체제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 하는 것이 핵심적인 연구과제로 제기된다. 하나의 가정으로, 북한의 체제위기 상황에서 가족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고 가족의 변화가 가족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것인만큼, 체제의 변화와 가족의 변화가 상호작용을 겪으면서 전개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가족의 변화는 북한체제의 변화를 전망하는 하나의 중요한 변수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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