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서사는 ‘공산당의 위대한 승리’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열강에 침략당해 온 중국’이라는 과거의 역사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민족적 치욕을 부각하는 중국의 근현대사 교육은 기존 사회주의 체제가 위기에 봉착한 1990년대를 기점으로 더욱 강화되기 시작했다. (…)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가 통합 논리로 부상했으며, 특히 외부의 적에 대한 저항적 내셔널리즘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려 인민을 결속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항미원조는 장기간 이어질 중·미 패권 경쟁 속에서 중국 애국주의 열풍의 새로운 불씨가 되어 인민을...
[사회/문화]
...말하는 장기분쟁(protracted conflict)의 한 형태이다.
장기분쟁의 한 형태로서 ① 분단정전체제가 이렇게 지속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② 그것이 대중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리고 ③ 그것을 어떤 시각과 접근으로 극복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이 세 질문에 대한 국내의 응답은 국제정치학, 안보연구, 통일연구 등과 같은 기성 주류학문이 모색해왔다. 그러나 그 응답은 분단정전체제의 장기화에 비판을 가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그것을 방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편파적이었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기성 학문체계 내에서는 냉전이 지난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냉전적 사고에 젖어있는 상태에서 북한을 대상화한 반면, 한국과 미국의 입장을 당연시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말하자면...
[학술논문] 냉전시대 남북 분단국가의 문화정체성 모색과 ‘냉전 민족주의’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process of the formation of a cultural identity of the divided North and South Korea during the Cold War. And In doing so, I would like to reveal that the emergence and transformation of 'Cold War nationalism' was deeply intertwined with the intervention of the Cold War hegemons, the US and USSR. There was the possibility of conflict between the
[학술논문]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사상계 경제팀’의 개발 담론
...경제정책에 호응하였던 것은 군사정권이 이들이 구축해온 개발 담론을 적극적으로 전유해가고 있었기때문이었다. 사상계는 분명 반공 민족주의, 근대주의로 가득 찬 텍스트이다. 그러나20세기는 민족주의와 근대주의의 시대였고, 식민지에서 해방된 직후 냉전과 분단, 전쟁과 전후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 휘말려 있던 한국 지성계가민족주의와 근대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은 어쩌면 그 시점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우리는 한국의 지성계가 축적해온 개발 담론이 군사정권의경제개발계획에 일정하게 반영되면서 자본과 시장 주도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 주도의 계획이라는 방식으로 정초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6․25 전쟁 후와 군사정권 등장 후 균등경제와 공익실현을 위해 마련되었던 헌법 조항들이 대폭 손질됨으로써 제헌헌법에서 국가에 부여되었던...
[학술논문] 민족주의적 국가전략을 통해 본 아베 내각의 대외정책과 동향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민족주의적 국가전략은 1990년 전후로 발생한 국내정치와국제정치의 변화 소용돌이 속에서 경제 대국으로서의 지위 상실에 따른 위기감을 정치․군사대국화 노선을 통해 보완하려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일본의 민족주의적 국가전략은전후 체제 하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해 온 거시성장 정치시스템에 기초한 기업국가의 위기42)와냉전질서 및 미일안보체제에 기초한 정치 소국주의 노선의 위기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선은 요시다→이케다→사토→다나카로 이어진 국가 이념과 진로, 즉 평화 헌법에 기초한 국제 평화주의와 전수방위, 경제성장 우선주의, 주변국들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 등을주된 내용으로 하는 정치 노선으로부터의 탈각이었다....
[학술논문] ‘탈냉전 민족 스펙터클’ - 2000년 여름 남북 이산가족 상봉 -
...글은 2000년 여름 이루어진 역사적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이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담론을 분석한다. '민족적 스펙터클'로서 이 상봉행사는 반공주의로 프레임된 이전의 이산가족 관련 사건들과는 급진적 단절을 보여준다. 민족주의와 반공주의의 접합 단절, 월북자 가족과 그 가족의 민족적 ‘언술 주체(enunciating subjects)’로서의 등장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보다 자세한 관찰은 가족과 민족의 알레고리를 통한 이산가족과 민족주의의 접합 및 이 과정에서 젠더의 작동 등 지속성도 보여주고 있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산가족 문제는 여전히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근대적 프로젝트에 의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2000년 여름의 변화는 한국적 정체성의...
[학술논문] 1950~70년대 ‘사상계’ 지식인의 분단인식과 민족주의론의 궤적
...세력과의 민족주의 논쟁에 임했다. 이후 사상계 지식인들은 박정희 정권의 대일 저자세 외교를 규탄하며, 그들 나름의 저항 민족주의를 정초해 갔다. 그리하여 민족주의를 놓고 관주도 캠페인과 민간의 대항 담론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3ㆍ1운동의 재현과도 같았던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을 거치며 사상계 지식인들의 민족주의 담론은 경제적 영역에서 정치적 영역으로, 저항적 차원으로 나아가며 면모를 일신하였다. 그들은 정권의 전매특허였던 ‘민족 주체성’을 주권자 국민의 이름으로 전유하고, 미국 중심의 자유세계론에서 한 발짝 물러나 국가 주권과 국익 우선을 앞세우면서, 예속적 근대화 대 자주적 근대화의 대결구도로 근대화 담론을 이끌어갔다. 그리고 시민불복종의 저항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