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북한 지역의 기온 자료를 활용한 벼 출수 한계기 및 재배 기간 분석
...7월 16일과 27일로 가장 빨리 출현하였고, 해주에서 각각 8월 18일과 28일로 가장 늦게 출현하였다. 연도별 안전 조기 이앙 한계기부터 안전 출수 한계기까지 기간의 중위값은 혜산 51일∼평양 109일, 출수 만한기까지 기간의 중위값은 혜산 65일∼남포 119일 범위로, 안전 출수 한계기보다 출수 만한기 기준 출수 소요일수의 중위값이 지역에 따라 9∼15일 증가하였다. 연도별 안전 조기 이앙 한계기부터 안전 출수 한계기 및 출수 만한기까지 기간의 상한값과 하한값은 지역에 따라 각각 21∼50일과 13∼51일의 큰 차이를 나타내었다. 안전 조기 이앙 한계기 이후 출수기까지 60일 이상 확보되는 비율이 80% 이상인 지역은 안전 출수 한계기를 적용한 경우에 개성, 해주, 용연...
[학술논문] 북한 지역별 기온 자료를 활용한 벼 안전 재배 시기 분석
...안전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었다. 특히 북부 고산 지대에 속하는 4개 지역에서는 안전 재배 가능 연도가 한 해도 출현하지 않았으며, 동해안 북부 지대의 선봉에서는 16%로 낮아 벼 안전 재배가 어려울 것으로 분석되었다. 지역에 따라 안전 조기 이앙 한계기는 사리원의 5월 4일∼신포의 5월 24일, 안전 출수기는 강계의 7월 21일∼해주의 8월 11일, 수확 한계기는 강계의 9월 17일∼해주와 장전의 10월 16일 범위였다. 안전 조기 이앙 한계기∼안전 출수기 기간은 양덕에서 67일로 가장 짧았고, 해주에서 97일로 가장 길었다. 안전 출수기∼안전 수확 한계기 기간은 양덕, 희천, 강계에서 60일 미만으로 짧았고, 장전과 원산에서 70일 이상으로 길었다. 본 연구는 북한...
[학술논문] 북한 저온 지역의 기온과 일장 조건에서 벼 품종의 출수 반응
북한 저온 지역의 재배 기간과 환경 적응 벼 품종 선정을위해 각 지역의 조기이앙 한계기 – 출수기 기간 중 기온과일장 변화 조건에서 남한 조생종, 북한 품종, 중국 동북3성품종을 공시하여 30일간 육묘한 산파묘와 포트묘의 출수반응 차이를 검토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산파묘를 이앙재배하는 경우 안전출수 한계기가 나타나는 6지역에서 안전출수 한계기까지 출수한 품종은 지역에 따라 생육 기간이 매우 짧은 몇몇 품종으로 제한되거나 나타나지 않았으며, 남한 품종 중에서는 희천 환경에서 조운이 유일하였다. 2. 산파묘의 경우 안전출수 한계기 – 출수만한기 사이에 출수한 남한 품종은 기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함흥, 평강, 희천, 강계 환경에서 공통적으로 진부올, 백일미, 조운, 조품, 진옥, 조평...
[학술논문] 북한 주요 벼 재배지역의 기온과 일장 환경에서 품종의 출수 반응과 지역 적응성분석
북한 주요 벼 재배지역의 재배기간 및 환경 적응 벼 품종을 선정하기 위하여, 13 지역의 조기이앙한계기~출수기기간 중 기온과 일장 변화 조건에서 남한, 북한, 중국 동북3성의 40개 품종을 공시하여 출수 반응 차이를 검토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북한 주요 벼 재배지역 환경에서 출수가 가장 빨랐던 품종은 지역에 따라 중국 동북 3성 품종 중 Kenjiandao3,Nongdae3과 북한 품종 중 올벼1, 올벼2, 선봉9로 나타났으며, 동해안 남부의 장전과 원산에서는 남한 품종인조운이 가장 빠른 수준을 보였다. 2. 시험 대상 13 지역 중 안전출수한계기까지 출수한 품종은 해주와 사리원 환경에서 34개로 가장 많았고, 원산,장전, 수풍, 용연에서 16~17개로 가장 적었다. 3. 북한 서남부 평야지에 위치한...
[학술논문] 도래하지 않을 미래를 쓴다는 것 ―해방기 북한 토지개혁과 『농민소설집』(1949) 시리즈를 중심으로
이 글은 북조선농민동맹중앙위원회 군중문화부가 토지개혁 3년차를 맞아 출간한 『농민소설집』 시리즈(총3권·4책)의 기획 배경과 의의를 살펴보았다. 『농민소설집』은 전형적인 농촌 선전 서사로 읽히기 쉽지만, 그 서사의 배면에는 당대 북한사회의 핵심 과제들과 욕망, 난제들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해방기 ‘토지개혁’은 북한에서 이룩한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와 ‘민주주의’의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자, 진정한 ‘해방’의 의미와 본질을 설파할 수 있는 증좌였다. 남북은 ‘두 번의 해방’이라는 수사를 통해 ‘해방’의 의미를 각기 전유하고, 이념적 정당성과 우월성을 증명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