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고종 대 책보의 봉안과 이동 - 북한행궁과 종묘 봉안을 중심으로 -
...규장각 이문원을 활용하였다. 이에 따라 새로운 존호 책보를 올리면 새로운 책문과 기존에 가지고 있던 보인을 이문원으로 옮겨 잠시 봉안하였다가 다시 북한 행궁에 봉안하였다. 한편, 왕이나 왕후가 승하하면 살았을 때 받았던 책보는 곧바로 빈전으로 옮겨졌 다. 이러한 과정을 신정왕후 국장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발인과 반우 때에 책보는神帛과 虞主를 따라 왕릉으로 갔다가 혼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묘 때에 신주와함께 종묘에 봉안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작 당시에 책을 넣어두었던 外櫃와 보와 함께있었던 朱筒, 朱盝, 護匣 등은 제거되었다. 이는 조선후기 존호를 올리는 것이 늘어남에 따른 책보의 과잉 때문이었다. 책보의 과잉은 책장과 보장의 공간을 부족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하여 부속품들을 최소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