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60년대 후반 북한의 군사모험주의와 당․군 관계 변화
이 연구는 1960년대 후반 북한의 군사모험주의 전략의 변화가 당·군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분석하였다. 북한의 군사모험주의는 무력통일의 호기(好期)를 잡으려는 강박감의 표출이자,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북한의 군사모험주의가 가장극렬했던 1968년에 벌어진 1·21 청와대 기습과 푸에블로호 나포, 울진· 삼척 무장공비침투는 시기별로 변화된 군사모험주의 전략이 반영된 결과였다. 1968년 중반에 들어 군사모험주의 전략은 크게 수정되었다. 그동안 군사모험주의 전략 추진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던 군부강경파는변화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완전히 실패하였다. 김일성은 군부강경파를‘군벌관료주의자’로 매도하며 역사의 무대에서
[학술논문] 김정일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후계체제의 위기
1970년대 김정일 후계체제는 안정적이지 않았다. 김정일은 후계자 결정단계부터 경쟁자들 사이에서 거세공포를 겪었고, 후계자 내정 이후에는후계체제 구축의 속도 문제로 김일성의 견제를 받았다. 후계자로서 권한확대를 위한 아버지와의 동일시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김동규 사건은김일성의 의중을 파악한 부주석 김동규가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을비판한 친위쿠데타였다. 김동규 사건 이후 김정일은 자중했고, 후계자로서 위상과 역할은 다소 위축되었다. 하지만 김정일의 자숙기간은 길지않았다. 당시 북한의 대내외적 상황 변화는 김정일의 지도력을 필요로했다. 체제 결속을 강화하고, 경제 사업에서의 당적 지도를 강화하기 위해 김정일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을 김일성도 인정하였다. 자숙기간 동안 당과 군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해온 김정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