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한국 소설 속에 나타난 인민재판의 양상 - 황순원ㆍ장용학ㆍ조정래의 소설을 중심으로 -
...인민재판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가는 보이는 폭력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폭력도 무서운 것임을알려주었다. 장용학은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의 체험을 담은 수기를 보고 소설을 착상, <요한詩集>을 썼다. 공산포로가 반공포로를 인민재판을 통해 죽이고그 시체를 잘라 똥통 속에 빠뜨린 것을 보고 주인공 누혜는 고통을 못 이겨 자살의 길을 택한다. 동족을 인민재판을 통해 죽이고 시체를 훼손하는행위는 아무리 그 이념이 좋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는 생각을 장용학은 한 것이기에 누혜를 자살로 이끌었던 것이다. 공산포로를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르게 한 살로메에 빗댄 것은 폭력이 잘못된 것이라는 작가의식의 소산이었다. 조정래는 ≪太白山脈≫에서 인민재판이 폭력에 대한 폭력적 반응이었다는 점에서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다. 미군정이...
[학술논문] 한국전쟁 휴전회담과 전후체제의 성립
한국전쟁은 개전 초기 1년간의 공격․방어전과 후기 2년간의 진지전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1951년 7월 개시된 휴전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걸림돌은 전쟁포로의 처리문제였다. 유엔측은 17만 명의 공산포로를 보유했고, 공산측은 총 1만 3천 명의 유엔포로를 보유했다. 10배 이상 포로 수가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공산측은 강제송환을, 유엔측은 자유송환을 주장했고, 휴전회담이 지연되었다. 전선 밖에서도 다양한 압력수단이 사용되었다. 공산측은 포로수용소 폭동을 일으키는 한편 유엔군이 세균전을 자행했다고 비난했고, 이에 맞서 유엔측은 북한에 대한 대대적 폭격으로 맞섰다. 1953년 봄 휴전에 대한 양측의 합의가 임박하자 한국정부는 휴전에 반대하며 이중공세를 펼쳤다. 한편으로 작전지휘권 환수, 단독북진, 반공포로 석방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