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북한도시의 내부구조에 관한 연구
...집중적으로 신설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반면 평양과 청진(함북)을 제외하고 1970년대부터 적은 수의 동이 신설되었고, 1970년대 이후 북한의 낮은 도시화 과정의 침체를 나타내었다. 1980년대와1990년대에는 신설된 동의 수가 약간 증가하지만 이는 특별한 도시건설 계획이실현되는 경우임을 살펴보았다. 두 번째로 1980년대 이르러 제일 늦게 시로 승격된 8개 도시의 옛 읍과 옛 노동자구가 있었던 위치를 통해 각 도시의 도심지와부심지의 위치를 조사하였다. 조사된 8개 도시는 대부분 옛 노동자구 즉, 탄광과소위 ‘옛 공업’들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 후에 북한경제가 글로벌시장으로 인해 열리게 된다면 이 지역들은 구 동독의 공업도시들과 같이 많은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라 전망하였다.
[학술논문] 일제강점기 淸津의 팽창과 정어리 어업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한편 도시 개발과 정어리 어업의 발달은, 값싸고 안정적인 원료 공급을 원하는 일본 자본의 침투도 유도하였다. 1933년 본점과 공장을 淸津에 설립한 朝鮮油脂株式會社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후 다수의 정어리 어업 관련 공장 및 중공업 관련 공장들이 속속 설립되면서, 淸津은 무역항·漁港, 그리고 공업도시로써 보다 팽창하게 되었다. 1930년대부터 조선총독부가 진행한 북한 지역 중공업화 정책 및 1931년 ‘만주사변’으로 가속화되는 일본의 대륙침략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비록 1942년 이후 정어리 어획의 급감으로 淸津의 정어리 관련 공업은 커다란 쇠퇴를 맞이하였으나, 정어리 어업과 관련 공업은 淸津의 도시 팽창과 공업도시화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학술논문] 일제 말 평양시가지계획의 실시와 공간구조 변화
본 논문은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평양시가지계획의 수립과실행 과정을 통해 평양의 도시 공간구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고찰한다. 평양은 개항 이후 선교 거점도시에서 공업도시로, 그리고 현재는 북한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 같은 변화는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의 영향을 깊이 내포하고 있다. 본 연구는 1934년 제정된 조선시가지계획령이후 평양에 적용된 시가지계획의 수립 배경과 행정구역 확장, 가로망 정비, 토지구획정리사업, 공업·주택용지 조성계획의 수립과 중단 과정까지를 사료에 기반하여 분석하였다. 특히, 총독부 관보와 평양시가지계획 관련 문서, 당시 신문자료 등을 바탕으로, 시가지계획 구역의 설정과 이에 따른 교통망 구축, 주택지 및 공업지 배치, 인구밀도 완화 전략 등을 구체적으로 추적하였다...
[학술논문] 사회주의 이행기 북한의 화학공업도시 함흥-흥남의 형성 :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1945-1961
본 논문은 해방 후 사회주의 이행기 화학공업도시 함흥-흥남이 형성되는 과정을 생산력과 생산관계 중심으로 보았다. 현재 행정구역상 함흥에 속 해있고 지리적으로 12km 떨어져 있는 흥남은 식민시기 전기화학공업으로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공간이었다. 사회주의 이행기 화학공업도시 건설을 위해 흥남의 생산력이 필요했으나 기술과 관리체계가 없었다. 기술자 확보를 위해 남한 학자들에 대한 월북을 유도했고 이로서 최초의 「흥남화학공업대학」이 세워지고 공장관리운영을 위한 지배인양성소와 기술양성소가 생겨났다. 특히 리승기 박사의 ‘비날론’ 발명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2.8비날론 공장을 건설하여 ‘주체’를 실천으로 생산한 사회주의 화학공업도시로 되었다. 사회주의적 생산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학술논문] 북한 공간구조와 이념적 표현의 도시 계획
...흔적을 이데올로기 뿐만 아니라, 공간과 도시에도 남겨 놓았다. 북한의 공간에 대한 사회주의의 이념의 적용은, 조방적(extensive) 토지이용을 가져왔고, 도시의 성장을 억압하였다. 공간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직장과 주거지의 근접과 지역공동체를 추구하였고, 산업시설을 분산시켰다. 공간에 대한 군사적 판단은, 중공업 우선주의와,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공업도시와 북부 내륙 지역을 중심으로 중공업화로 나타났다. 또 북한의 도시에 나타나는 도시계획의 특징은 소련‧동구의 경험에 북한의 현실을 반영하는 절충주의이다. 특히 평양은 이념의 선전도구이면서, 주체사상의 영향으로 서구적 특징과 북한적 특징이 결합되었고,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개인적 ‘의도’와 ‘취향’까지 반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