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해방기 창작 창극과 국민/여성
...동원되는 양상을 밝히는 것이다. 미군정기에는 조선고전음악연구회와 국극사가 새로 조직되어, 당대 현실을 배경으로 한 창작 창극을 공연했다. 광주 지역에서 결성된 조선고전음악연구회는 <건설하는 사람들>(1945)을 여러 지방에서 공연했고, 북한 지역에 유사한 이름의 단체가 조직된 즈음 사라졌다. 서울에서 결성된 국극사는 농민의 갈등을 경희극풍으로 다룬 <청산도 절로 사람도 절로>(1946)를 공연하며 일제 말기에 인기를 끈 박귀희의 여창남역 표현술을 재활용했다. 창극이 민족오페라로 불린 정부수립기에는 (역사)설화 소재작들이 공연되었는데, 항일을 행하는 여성을 앞세운 경우와 일제 말기의 화제작을 재공연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국극사의 <선화공주>(1948)는 여성 주인공을 내세웠고...
[학술논문] 한국창극사를 통해서 본 해방공간 창극 연구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해방 후 창극은 비로소 재도약 시기를 갖게 된다. 좌우익의 대립이란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침체란 기본적 사회적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 고조된 민족주의와 함께 국악인들이 ‘대한국악원’을 중심으로 모였고, 국악인들은 창극을 그들의 가장 주요한 공연 방식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대한국악원 직속의 ‘국극사’와 개별단체들인 ‘조선창극단’, ‘국극협단’, ‘김연수창극단’ 등이 기존에 해 왔던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장화홍련전> 등의 작품들도 제대로 다듬고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작품들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그래서 <청산도...
[학술논문] 월북 국악인 조상선의 창극 활동과 의미
...조상선은 주로 조역으로 출연했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창작과 연출에 큰 관심을 보였다. 1940년대에 들어서 화랑창극단과 동일창극단에서 다양한 창극 음악을 새롭게 시도했다. 그의 작업은 그가 월북한 이후로도 창극 배우들, 특히 여성국극의 전성기에 활동했던 제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조상선은 국악원 산하의 창극단인 국극사의 대표이사를 맡을 만큼 창극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활동했다. 창극 배우뿐 아니라 작곡가·연출가·안무가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갔다. 창극 창작의 거의 모든 요소들을 두루 경험하면서 가장 노련한 창작자로 거듭났다. 여성국극의 시대가 열리자 조상선의 활약은 더욱 도드라졌다. 여성국극 초기의 대표적인 작품들의 작곡을 조상선이 맡았다...